알 배추와 과유불급(過猶不及)

제11편 선진(第11篇 先進) - 15

by 누두교주

『논어』의 문장 중 꼰대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고를 것이다. 이 말은 “지나친 것은 못 미치는 것과 같다”의 뜻으로 공자가 제자의 뒷담화 과정에서 한 말이다.


자공(子貢)이 “사(師)와 상(商)은 누가 더 낫습니까?” 하고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사는 지나치고 상은 조금 못 미친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사가 낫습니까?”라고 하자 “지나친 것은 못 미치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①


자공이나 사, 상은 모두 공자의 제자 이름이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평을 하는 것을 뒷담화(backbite)라고 한다면 지금 공자와 자공은 뒷담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과유불급’을 주장하는 공자의 시각은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어떻게 현실에서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딱 중용(中庸)의 균형을 마르고 닳도록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문자 써 가며 훈계질하는 게 꼰대라면, 이게 가장 좋을 예일 수 있다.




인류의 가장 걸작 중의 하나인 ‘웃통 벗은 아줌마’를 보라. 우연한 결핍이 주는 안타까운 아름다움은 조각을 만든 작가와 자연 그리고 시간이 완성한 걸작이 아닌가?


웃통 벗은 아줌마. 일명 밀로의 비너스라고 한다. (중국어 론 米罗的维纳斯)팔이 결핍되어 있다. (출처; https://me2.kr/BNif , 검색일, 2023.02.20.)


공자의 말이 틀리고 노자의 말이 맞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는 노자의 말이 듣기 좋다.


계속 채우려 드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더 낫고, 잘 다듬어 예리하면 오래갈 수 없다.②


뭐든 빈틈없이 하려고 하고 꽉꽉 채우려고 해 봐야 오래갈 수 없으니 적당히 하고 넘어갈 땐 넘어가는 것이 옳다. 설령 뭔가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도 내놓고 자랑하지 말고 한발 물러서라는 말이 이어지는 구절이다. 그러니 못 미치는 것이 현명한 결과가 된다.




우리는 흔히 사족(蛇足)이라는 표현을 쓴다. 뱀을 그리라고 했는데 괜히 쓸데없이 발을 더 그려 넣어 결국 뱀이 아닌 셈이 되어,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지나친(過) 것은 못 미치는 것(不及)과 같다고 설교할 때 주로 쓴다. 그런데 뱀 발을 지네 발만큼 많이 그린 경험을 했다.


작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동네 주민센터에 운동하러 갔다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직거래 장터를 만났다. 당시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배추가 무척 비싸, 작은 거 한 통에 오천 원 정도 하던 때였다. 그런데 무심히 한쪽을 보니 노랗게 예쁜 알 배추가 ‘삼천 원’ 팻말을 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하나 달라고 했더니, “남자분이 사니 고맙다”며 좀 작은놈 하날 그냥 주시는 게 아닌가? 40% 세일 도 황송한데, 거기에 1+1이라니? 혹시 밀수한 알 배추가 아닐까? 하지만 알 배추를 건네는 아저씨의 서글한 눈매는 나도 따라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저절로 하게 했다.


집에 돌아와 알 배추 두 통을 잘 씻어 갈무리하며, 나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걸 쪄서 쌈으로 먹어도 좋고, 썰어 물김치나 겉절이를 해도 좋고, 전으로 부쳐 배추 전으로 먹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알 배추의 결말은, 누군가가 그냥 와삭와삭 씹어 삼키는 것으로 소모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먹거리 장터만 보면 그 지나침에 대해 추억한다. 그리고 무슨 덤을 이렇게 과하게 주냐고, 격렬하고, 과감하게 저항하지 않았던 나의 판단에, 재삼 경외감을 가지기도 한다. 때로는 지나침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논어』의 이 구절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지나치고 못 미친 것이 같다고 했지, 무엇이 나쁘다고 말한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누가 더 낫냐(孰賢?)’고 뒷담화를 유도하는 자공의 질문에 대답은 하면서도, 험담의 여지를 주지 않고 있는 공자를 느낄 수 있다.


공자 본인도 오버하다가 뻘춤 한 적도 있고, 스스로 생각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며 자기 흥에 겨워 세월이 가는지 모르는 늙은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다. 그도 말은 중용을 강조했지만, 항상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과유불급’의 올바른 해석은, 꼭 과유불급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남으면 남는 대로 나눌 줄 알고, 모자라면 그것을 알고 채우도록 노력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고 평생 내내 조금도 지나치지 않고,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정확히 딱 중용의 균형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렇게 해라!



대문 그림 : 요렇게만 살 수 있다고? (출처; https://me2.kr/XoKKt, 검색일, 2023.02.20)


① 류종목 지음 『논어의 문법적 이해』 ㈜문학과지성사. 서울. 2020. p. 364-365.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② 최진석 지음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소나무. 서울. 2001. p. 84-85. 원문은 다음과 같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不可長保. (노자 도덕경 제 9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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