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의 처형장 - 何莫學夫詩?

제17 양화 편 (第十七 陽貨篇) - 9

by 누두교주

3·1절이다.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한(恨)과 이별의 정서를 노래한 '진달래꽃이 제격인 날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그런데 이게 정말 이별의 정서를 노래하고 우리 민족의 한을 노래한 시(詩)일까? 우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답을 써야 서울대학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딱 그거 때문에 서울대 못(안) 갔다)




누구를 대상으로 쓴 지는 모르지만, '나'는 상대방('님'이라고 하자)을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까 역겨울 때만 가야 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 아닌가? 또 님은 아직 안 떠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아직 이별한 상태는 아니다. 그리고 설령 떠나더라도 내가 산에 올라가서 진달래꽃 한 아름 따올 때까지는 못 간다는 출발시간제한을 설정하고 있다.


그래도 혹시 갈 경우를 대비해, 가려면 꽃잎을 위에서 내려 눌러 밟는데 사뿐히 밟으라고 한다. 게다다 걸음걸음 밟으라니, 그래서 언제 가나? 차라리 그냥 가지 말라고 할 일이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려면 일단 역겨워야 된다. 역겹지 않다면 죽지 않아도 울겠다는 이야기고(죽으면 울기 어렵다) 역겹지 않다면 가지 말라는 이야기다. 여기 뭔 한(恨)스런 마음이 있을까?


난 아무리 봐도 이 시는 사랑의 절정을 노래한 것 같다. 달뜬 심정을 노래한 '아흐 다롱디리' 계열의 sexy한 시다. 아직 덜 녹은 산언덕을 질펀히 붉혀가는 진달래꽃 생긴 것처럼.


진달래꽃 이 피었다. 우리 민족의 한(恨)과 이별의 정서가 느껴지는가? 내 눈엔 흐벅지고 sexy하다. (출처 : https://vo.la/ScPsm, 검색일. 2023.03.01


넌 등 떠밀어도 못 간다. 내 이리 널 좋아하고 진달래 이리 천지 삐까리로 핀, 존 봄날, 흐드러진 진달래꽃같이 우리 사랑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눈물 날 만큼 기쁘지 않은가!! 놀자!!


내가 해석한 진달래꽃이다.


내가 당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오해(또는 무시)하고 시인의 간절한 조국애의 마음을 왜곡시켰다고? 그러면 당신은 앞으로 암탉이 의도하는 대로만 달걀을 대할 일이다. (품어라! 먹지 말고)


시는 시인이 노래하는 순간 듣는 사람의 이해에 따라 변주될 수밖에 없다.




시를 시로 보지 않고 의미로 보고, 교훈으로 보고, 타인의 통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도 유용하다. 그 시작은 공자가 했다.


얘들아, 왜 『시경』을 공부하지 않느냐? 『시경』의 시들은 사람의 감흥을 일으켜 줄 수 있고,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게 하며, 남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며,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기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하며, 새 짐승과 풀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하는 것이다.①


『시경(詩經)』은 여러 곳에 흩어진 노래 가사를 모아 놓은 책이다. 궁중에서 연주하던 수준 있는 노래 가사부터 일반 서민의 노래 가사를 망라해 수집해 공자가 정리했다고 한다. 물론 멜로디는 전하지 않는다.


공자가 주장하는 것은 노래 가사 300편을 공부하면 “연상력이 배양되고, 관찰력이 제고되며, 군집성이 단련된다”② 는 것이다. 나는 시경을 아무리 봐도 이런 효과를 체험하진 못했다.


『시경』을 읽어 부모와 임금 섬기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외국인 한국 귀화 시험과목에 반드시 시경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외국인 범죄 근절에 이보다 더 좋은 덕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조치를 아직 취하지 않고 있다.


시경을 보고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안다? 같은 물건도 동네마다 틀린 이름으로 부르는 나라가 중국이다. 같은 귤도 동네가 바뀌면 탱자가 되는데 노래 가사를 통해 이런 걸 배우는 것이 좋은 생각일까?


『시경』에 자주 나오는 갈대 또는 물억새 그림이다. 이거 이름 알겠다고 사전이나 식물도감 뒤적이는 게 제정신일까? (출처;https://vo.la/iSDnW , 검색일, 2023. 03.01)




작년(2022년) 10월 14일 만난 이문재 시인은 다음과 같이 울 듯이 말했다. 나도 함께 우울했고 뭉클한 분노를 느꼈다.


시를 중, 고등학교 교실에서 구출해내야 한다.

거긴 시의 감옥이고 시의 처형장이다.

시는 삶의 문제이고 삶과 연관돼 읽어야 한다.


시가 싫은 것이 아니고 (그렇게 가르치는) 국어 선생이 싫고 시험이 싫은 것이다.



대문 그림 : 서대문 형무소다.(출처: https://vo.la/B5 oEm, 검색일. 2023.03.01) 조폭들은 교도소를 '학교'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공자의 말이 지금도 사실이라면 형무소에선 『시경』을 가리켜야 한다.


①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 306-307.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小子! 何莫學夫試?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羣, 可以怨, 邇知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② 杨伯峻。『論語譯註』中华书局. 北京. 2019. p.183. 원문은 다음과 같다. 可以培养联乡力, 可以提高观察力, 可以锻炼合群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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