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 이름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문경(聞慶 – 좋은 소식을 듣는다)이 그렇다. 본래 고구려 땅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아 지은 이름은 문희(聞喜 – 기쁜 소식을 듣는다)였는데 고려 때 바꾸었다고 한다. 비슷한 뜻의 좋은 이름인데 왜 바꾸었을까? 정치인들 뻘짓하는 건 지금이나 과거나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지난 2월에 걸음 한 문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시내 중심은 물론, 시장통에도 사람 보기 어려웠다.
문경서 서울 가는 험한 길은, 큰 꿈을 품고 서울 가는 이의 발길에 닳고, 꿈 접고 빈손으로 고향길 오르는 이의 발길에 쓸려, 반들거리기가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인적이 끊겨 몇 해 못 가 이끼며 들풀들이 슬금슬금 서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경의 냄새는 알싸하다. 발길이 끊긴 시장지만 길을 향한 좌판엔 철 이른 풋마늘이 벌써 나와 있다. 작년 4월인가? 이미 철 지나 대가 찬 마늘을 몇 번인가 우적거리다 아쉽게 던져버리고 계절이 3번 지나 만난 풋마늘이다. 서울에서 파는 것처럼 손을 탄 모습이 아니고, 그냥 막 밭에서 뽑아와 대충 단을 엮어 놓은 것을 3,000원에 샀다. 보기엔 어린 마늘 같은데, 알싸한 마늘 향이 백팩에서 솔솔 피어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집안의 마늘이 틀림없다.
나는 마늘을 좋아하지만, 마늘은 기름과 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풋마늘은 ‘회(膾)’로 먹어야 하는 법! 기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먹다 남은 김치찜을 데피고, 두부를 삶았다. 그리고 금 년 첫 풋마늘 정찬(生吃嫩蒜)을 시작했다. 여리고 연한 것이, 보통 야무지지 않다. 진짜 풋마늘은 이만큼 '아려야' 제대로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그 반대가 있는 법. 금 년 풋마늘 향연은 맥없이 끝났다. 우선 문경에서 데려온 풋마늘이 다 떨어지도록, 서울 채소전엔 풋마늘이 나오지 않았다. 달포가 지나 겨우 풋마늘이 보여 맛을 보았지만, 문경치에 비해 택도 없는 맛이었다. 내년엔 문경 가서 3만 원어치는 사 올 요량이다.
1990년대 후반 어느 해, 중국 산둥반도 남쪽 교주시(膠州市)에서 북쪽 위해시(威海市)를 다녀온 적이 있다. 시간이 바튼 출장길이라 이른 새벽에 출발해 일을 보고 점심 식사 직후 출발해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에서 설핏 졸다가 소란스러움에 깨어보니..... 아뿔싸! 천지가 마늘쫑 이었다.
지평선이 아득한 평원 전체가 마늘밭인데, 마침 그날이 마늘쫑 출하 일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야 장아찌 정도로나 먹었던 것 같은데, 저 많은 걸 다 뭐 하나 싶었다.
간신히 줄지어 늘어선 트럭 사이를 비집고 다시 길을 잡아 임지로 돌아왔다. 기다리고 있던 기학군(紀學軍) 선생에게 마늘쫑 요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항상 그렇듯 "좋아!(可以!)하고는, 실실 웃으며 차 키를 빙빙 돌리며 앞서 길을 잡았다.
깍두기 크기만큼 한, 돼지고기가 푸짐한데, 그 사이에 기름기 반질한 마늘쫑이 듬뿍 섞여있었다. 돼지고기는 마늘향이 배어있고, 마늘쫑은 돼지기름을 적당히 머금고 있었다. 산동의 구린듯한 누룩향 그윽한 술 한동이가 많게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 본격적으로 마늘쫑이 보인다. 굵고, 짙은 색에 상대적으로 긴 것은 중국산이다. 우리 것은 가늘고, 옅은 색이며 좀 짧다. 그리고 비싸다. 중국산은 항상 살 수 있지만, 우리 것은 복숭아 나오기 시작하면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서둘러야 한다.
1.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웍(鍋 -둥근 팬)을 가열시킨 후, 돼지고기 투하!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순두부찌개 하려고 소분해 둔 돼지고기 간 것을 썼다. 내가 먹을 거라 누구 눈치 볼일도 없다.
2. 송송 썬파와 편 썰기한 마늘을 투하 – 못살게 굴다가 간장 한 큰 술
3. 한입 크기로 자른 마늘쫑 투하 – 굴 소스 한 큰 술 – 이제부터는 불이 재료들과 대화할 시간이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깐챠오 쑤안타이(마늘쫑 볶음이다)다. 가끔 음식을 입에 넣으면 울컥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대문 그림 : 문경 관갑 잔도 넘어가는 길 중간에 큰 돌 두 개 위에 통나무 하나를 얹어 우드슬랙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서울가 망해서 집으로 가다가 여기쯤 앉아서 집으로 갈까 말까 생각해 보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
① 마늘쫑은 표준어가 아니다. 마늘종이 표준어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만든 건 마늘쫑볶음이다. 그래서 나는 마늘쫑이라고 썼다. 이경우 문경 말로는 "우짤낀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