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와와가 된 개털이

by 누두교주

개들은 털을 선택 해 벗었다 입었다 할 수 없으므로 계절에 따라 털갈이를 한다, 새로운 털이 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묵은 털이 빠지는 것은 아주 성가시다. 더욱이 털이 긴 종류의 개털은 잠깐 사이에도 털 뭉치가 몇 개씩 굴러다닌다. 또한 속 털은 아주 가늘고 가벼워서 폴폴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를 구박하는 항목 중에 항상 ‘청결’이 포함된 아내나 까칠한 아이들까지 개털이의 개털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했다. 굴러다니는 털 뭉치나 옷에 붙은 개털, 또는 날아 다니는 개털을 보고 불평을 해대면 누구든 듣는 사람이 바로 뺏어가면서 “뭘 그런 걸 가지고!” 하면서 힐난한다. 하지만 선천적인 나의 “앨러지성 비염”은 개털 이를 일 년에 서너 번 알 개를 만들 수밖에 없게 했다.




처음 털을 민 개털은 지금 상상해도 웃음이 터진다. 긴 털이 있어 우아하고 도도한 분위기의 녀석이 털을 밀어 놓으면 딱 ‘비루먹은 강아지’ 꼴이 된다. 사람이라도 동의 없이 옷을 홀랑 벗겨 놓으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털을 깎은 후에 보니 털이 있어서 그런지 개의 속 피부는 사람의 피부보다 훨씬 얇고 부드러워 털을 깎는 기계에 쉽게 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래서 털을 깎고 나면 작은 상처들이 생기고, 설령 상처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개 입장에서는 아주 불편(쓰리고 아리고 따끔거릴 것이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이 살려면 다른 방법은 없고 미안하기는 하고 아내 몰래 ‘베이비오일’을 발긋한데 살며시 발라주곤 했다.




털을 밀고 난 후엔식구가 개털에게 매달려 아양이다. 아이들은 간식을 바치고 산책을 모시고 나가고 아내는 부드러운 실로 개털이 입힐 옷을 짠다고 밤늦게 까지 야근을 했다. 나도 일말의 죄책감이 있어 주말에 예정에 없던 나들이를 제안했다. 행선지는 ‘월드컵 공원’이었다.

아내가 새로 짠 옷을 입혀 개털이를 데리고 새로 조성한 공원을 아이들과 산책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개털이도 털을 민지 며칠 되어 피부 빛깔도 적당히 안정되었고 사람이 많은 공원에 가족들과 외출하니 연신 깡총거리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좀 이상 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마나~ 포메네~” 하는 탄성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탱이를 키우며 강아지 품종의 정체성으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를 개털 이를 통해 자부심으로 승화했었는데 이상하게 이 날만큼은 아무도 그런 찬사를 보내 않았다. 그 이유는 잠시 후 드러났다. “야! 치와와다~” 누군가의 이러한 탄성에 털 밀어 알 개 가된 개털의 실상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어쩌면 우리가 ‘개 품종’이라는 허영심에 탱이를 보낸 거 아냐?”라고 슬며시 말을 건넸다. 아내도 시무룩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미 보낸 탱이 다시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개털이도 어차피 잡종인데 외모가 예쁘다느니 품종이 뭐니 따지지 말고 그냥 개털이로 지내는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으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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