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疾風) 노도(怒濤)의 탱이

by 누두교주

탱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 갔다. 아이들도 잘 자라 갔다. 이러한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한다면, ”집안의 말썽 발생의 빈도와 정도가 증대해 갔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두 치 “이므로 항상 왁자하고 활발하고 밝은 집안 분위기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이 즐기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지라 특히 부산스러운 아들 녀석을 골려줄 겸, 교육시킬 겸, 절에 참배 가는 길에 천왕각에서 ”말썽 부리는 녀석은 사천대 왕 아저씨가 밤에 몰래 잡아가 혼내준다 “고 얼러 준 적이 있다. 어느 날 밤에 보니 오줌이 마려 자다 깬 아들 녀석은 탱이를 턱 들더니 옆에 끼고 오줌을 시원히 눟고는 탱이를 내려놓고 잠들었다. 아들 녀석이나 탱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날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신길동에서 송파동으로 이사한 아파트 단지는 무척이나 오래된 단지였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가장 좋은 점은 나무들이 실하다는 것이다. 이른 봄 목련부터 시작해 현란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뒤이어 투명한 녹색이 짙어지는 초 여름 께면 낡은 아파트의 헤진 피부를 다 덮고도 남는 넉넉함이 있다. 특히 나른한 토요일 오후 퇴근길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낭만적인 감상에 젖은 퇴근길에 낯익은 여자가 뛰는 것이 보였다. 같이 사는 여자였다. 얼마나 뛰었는지 이미 얼굴이 발그레하고 호흡이 무척 가빠 보였다. 거기에 소리까지 질러대면서 내달리고 있었다. 더욱이 아내의 시선이 향하는 앞쪽에는 딸애까지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며 달리는 탱이가 있었다. 비록 아파트 단지 안 도로이지만 간간히 차도 다니고 있었고, 더욱이 조금만 더 나갔다면 큰길까지 나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간신히 탱이를 잡을 수 있었다. 흔히 청소년기를 표현하는 ”질풍(疾風) 노도(怒濤)의 시기(時期)“라는 표현에서 빠르고 강하게 부는 바람(疾風)은 세 여자(Three females. 아내, 딸아이, 탱이)가 뛰는 것이고, 성난 파도(怒濤)는 열 받은 아내와 딸아이가 잡힌 탱이를 구박(그들은 교육이라고 했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탱이의 청소년 시기(時期)가 왔음을 알리는 것과 다름 아니다. 아내는 청소년기가 이미 오래전 지났고 딸아이는 아직 멀었을 시점이라 아무도 탱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탱이의 불행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치’의 입장이라 낮잠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들은 커가고 아내의 동선도 넓어지는지라 아내에게 운전을 권했다. 아내가 운전을 하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서울시 행정의 난맥상을 아주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전봇대를 잘못된 위치에 세워놓는다 “ 거나 ”주차 차단 시설물 위치가 잘못됐다 “거나 아니면 ”지하 주차장 출구 방향 각도가 잘못됐다 “는 등이다. 물론 합리적 의심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잠자코 듣고 다치지 않은 것에 만족하자는 아내가 기대하는 결론을 내놨다. 가족이 함께하는 나들이 길에는 운전 연습 겸 가급적 아내에게 운전을 시키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수석 내 무릎 위에 앉은 탱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뒷자리 아이들에게 보내면 앞으로 오겠다고 더욱 난리이고 내가 안으면 아내한테 간다고 난리고, 아내한테 주면 나한테 온다고 난리이고. 참다못해 종이를 돌돌 말아 코를 때리며 조용히 하라고 야단쳐도 그칠 줄을 모른다. 내 언성이 올라갈수록 나들이하는 아이들과 아내의 분위기는 더욱 쳐지기만 하고 탱이는 탱이대로 스트레스받는 결과가 되고........

탱이가 커가면서 탱이의 모습이나 행동은 ‘포메라니안’과는 사뭇 달라져갔다. 우선 크기가 포메라니안 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어릴 적 솜뭉치 같던 순백의 털색은 등을 중심으로 누렇게 변하고 앙증맞게 뾰족하던 주둥이는 어디서 많이 보던 주둥이 모양이 돼갔다. 다만 꼬리는 북 실하고 풍만한 것은 포메라니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내에 따르면 예방주사를 맞히러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면 품종을 물어보는데 ‘포메라니안요’ 하고 대답을 하면 한숨을 푹 쉬는 의사 선생님도 계셨고 ”진짜요? “ 하고 반문하던 간호사 선생님도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날 잡아 검색을 해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포메라니안 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크기, 외형은 물론이려니와 포메라니안은 다리가 약해 높은 데서 뛰거나 하면 슬개골 탈구 위험이 있다고 하는데 탱이는 전혀 문제가 없이 날아다닌다. 그렇다고 사모예드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그래도 스피츠와 가장 비슷해 보였다.

부추를 듬뿍 넣은 야채, 고기만두와 묵은지 김치만두는 여름에 집에서 얻어먹기 어려운 별미이다. 재료를 다지고 물기를 짜는 것도 큰일일 뿐 아니라 만두를 빚고 삶거나 찌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여름날 어렵게 아내가 결심해 만두를 빚어 나가고 있는데 인터폰이 와서 잠깐 받으러 간 사이에 탱이가 식탁 위로 뛰어올라 만두를 몇 개 주워 먹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곱게 몇 개먹고 말일이지 식탁을 순식간에 그야말로 ‘개판’을 만들어 놓았다. 일단 탱이가 다시금 성난 파도(怒濤)를 경험하고, 탱이를 제대로 건사 못한 아이들에게 동티가 튀더니, 하필 그때 인터폰을 할 같은 라인 ‘반장 아주머니’가 성토의 대상이 됐다가, 갑자기 나에게 이 여름에 만두 먹자고 한 사람이 제정신이냐고 했다. 물론 내가 제정신인 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당분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는 항상 아내가 있었다. 나들이를 갈 때도 가급적 탱이를 데리고 함께 가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애견 호텔에 맡긴다. 즉 탱이 혼자 집에 남는 경우는 기본적으로 없다. 그런데 어느 장맛비 내리는 반상회 날 ”빈집에 개 짖는 소리“가 ”비상계단 흡연“과 함께 의제에 올랐고, 우리 집이 ”빈집에 개 짖는 소리“의 ”예“로서 활용되었다. 물론 몇 동 몇 호라고 특정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몇 동의 몇 라인 몇 층 부근“으로 표현된 것이 더 열 받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두 치’인지라 모른 척하고 있는데 아내는 단단히 약이 오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몇 동의 몇 호라인 몇 층 부근“에서 개를 키우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우리 개는 짖지 않는다는 믿음“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일 없고 짖지 않는 개 짖는다고 할 만큼 한가한 세상도 아니지 않은가? 사건 진실의 전말은 ”우리 집은 개 혼자 놔두고 비우진 않지만 완벽히 그렇지는 않다 “는 것이 첫째이고, ”집에 사람이 없을 때 탱이가 짖어도 너무 짖는다 “가 두 번째이다. 아내가 실험 삼아 탱이 혼자 두고 나가서 1층에서 주의 깊게 들어보니 격렬하게 짖어대는 탱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7층 집에 올라가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즉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짖기 시작해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하면 짖기를 멈추고 꼬리를 흔들며 문이 열리면 격렬하게 반가워하는 것이 사건의 진실이었다. 즉 ”심하게 짖는 개가 있었고 “ 그 주인공은 탱이였다. 겨울이 되면서 탱이는 다 자랐고, 모든 창문을 닫고 지내니 탱이의 짖는 소리는 공명을 더해 더 크게 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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