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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아닌 불행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하다.

by 개양이 CATOG

https://www.youtube.com/watch?v=GwCsemciN2c

https://www.youtube.com/watch?v=JmHccZ-JO14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삶'을 이해하는 것은 불행을 꼭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행운을 꼭 행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 사이 어디쯤 중심을 잡고 유연하게 흐름을 타는 것을 배우는 일인 것 같다. 내가 그림을 그려는 방향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그림쟁이에게 불행은 꼭 불행이지만은 않다. 나에게 닥쳐온 예기치 못한 불행은 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되, 그것에 오롯이 매몰되지 않고, 주변 사람, 그리고 환경을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게 이끈다. 그 일을 통과할 그 당시에는 감당해야 할 것의 무게가 너무 버거운 부분도 있었고 나에게 누군가가 '안 좋은 일은 꼭 안 좋지만은 않아.' 또는 '너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니까 이 역시 예술로 표현해봐'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정말 속 모르는 소리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그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불행이나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은 예술가에는 역설적으로 좋은 '영감'의 재료가 되는 것은 일정 부분 맞는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려운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해결하고자 몸부림쳤을 때, 분명, 좋은 그림이 나온다.


결국 다시 한국에 잠깐 귀국하게 이르렀다. 연이은 의료사고로 나는 캐나다에서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다행히 한국에서 오신 물리치료사 선생님을 찾아 수술, 재활과 학교를 병행했지만, 여전히 나는 다리를 절었다. 지금 돌아가면, 낙오자가 되어 돌아가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일 년이 넘도록 여전히 저는 다리를 놔두었다가 정말 이러다가 큰일이 날 것 같은 위기감에 한국에 와서 방학 시간 동안 재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 찾아간 재활센터에서는 처음에 2-3개월을 재활하고 캐나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내 다리는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다시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정도 더 재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정된 긴 인내의 시간은 나를 다시 꾸준한 간격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괴로웠지만, 어찌하겠는가. 결국 마음을 내려놓고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첫 번째로 찾아간 재활센터는 한국에서 프로 운동선수들이 재활을 하고 있는 스포츠 재활센터였다. 축구, 배구, 야구, 농구, 스케이팅, 등등 전 종목 유소년/프로 스포츠 선수들과 함께 출근도장을 찍으며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급급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프로 선수들 스케줄에 맞추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 매일 재활센터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강도 높은 훈련양으로 점심시간은 낮잠을 위해 1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나 역시 피로해서 낮잠을 잘 때도 있었지만, 이 시간을 운동선수들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운동선수들은 내기를 참 좋아한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딸기 라테 농구 내기를 종종 하며 선수들과 친해졌다. 농구 골대에 10골 중, 슛을 많이 넣기를 해서 이긴 사람에게 딸기 라테 사주기. 키도 작고, 운동선수가 아닌 나에게 딸기 라테를 얻어먹을 생각으로 선수들은 나에게 자주 내기를 걸어왔다.

결과는? 매번 딸기 라테를 공짜로 얻어먹었다.


"와.. 이 사람 뭐지?"


키도 작고, 운동선수도 아닌 나는 그들에게 웬지 어설프게 보여서 내기 대상으로 낙점되기 일쑤였다. 폼은 어설펐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슛 성적은 괜찮았고 그들에게 딸기 라테를 얻어먹으며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손이 심심해서 그리기 시작한 운동선수들의 초간단 캐리커쳐를 그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매우 어린 나이, 초등학생 때 그들의 선수로써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 프로선수가 되어 명성과 부를 쌓는 것은 아니다. 어린 선수들이 촉망받는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는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만큼 적은 확률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주목받는 유망주로 발탁된다 하더라도, 어떤 선수들은, 감독의 과도한 사랑 때문에 몸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플레이를 감당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매우 심한 부상에 시달리며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은퇴를 고민하기도 하고,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선수가 성장기를 거치며, 폭풍 피지컬 성장을 이루며, 주목받는 선수가 되기도 한다. 프로 선수나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된 선수들이더라도, 부상의 위험은 항상 떠안고 운동을 하며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 앞에서 오늘의 한계를 매일 넘어서는 사람들이었다. 딸기 라테 내기를 할 때는 장난기가 가득했던 선수들도, 훈련 시간이나, 필드(경기장)에 나가면 진지함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신체적 능력이 중요시되는 직업이 닌만큼, 은퇴시기 역시 굉장히 빠른 직업이지만,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재활하다 만난 사람. 축구선수 주호
재활하다 만난 사람. 물리치료사 다영 선생님
Screen Shot 2021-06-11 at 6.23.34 PM.png 재활하다 만난 사람. 쇼트트랙 선수 경주.
Screen Shot 2021-06-11 at 6.23.45 PM.png 재활하다 만난 사람, 축구선수 재경
Screen Shot 2021-06-11 at 6.23.57 PM.png 재활하다 만난 사람. 전 축구선수 현 물리치료사 안나 선생님.

그런 그들을 보면서, 다시 조금씩이라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도 없는 그림쟁이의 삶을 굳이 이렇게 이른 나이에 포기하면 스스로에게 너무 비겁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실적인 문제로 그 꿈을 이룰 유일한 사람이 그 일을 포기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현재 소속된 집단과 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스스로를 한 뼘 더 성장하게 이끈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이상해서 슬픈 개양이가 아니라, 이상하기에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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