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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16. 2020

식탐과 고양이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

혹시 반려동물을 기르고 계신지? 그렇다면 매우 부럽다. 필자는 부모님께 얹혀 살 때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것에 대한 의사를 몇 차례 전달한 바 있으나 매번 ‘너나 잘 키워라’라는 대답을 들은 이후에는 반쯤 포기했더랬다. 독립해 살게 되면, 그 날이 오면 꼭 어떤 동물이든 한 마리를 입양해 함께 살아 보리라는 소망을 품었었다. 막상 독립한 현재에는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지 새삼 깨달으며 부모님의 말씀을 뼈에 새기고 방 청소나 열심히 하는 중이다.

애완견’과 ‘도둑고양이’대신 ‘반려견’과 ‘반려묘’, ‘길냥이’와 함께 살고 있는 오늘이다. 10여 년 전쯤과 비교해 보면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발전했다. 덕분에 유튜브와 공중파를 막론하고 반려동물 콘텐츠가 필살기로 떠오른다. 특히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의 경우 전 세계에서 인기가 폭발적이다. 단순히 고양이의 행태를 관찰하는 영상뿐만 아니라 이상 행동을 교정하는 방법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양이 관련 정보를 담은 콘텐츠들도 상당수 있어 나처럼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간접 체험을 허락해 준다.

구경하다 보면, 집집마다 고양이 무늬만큼이나 다양한 사정들이 있다. 하루종일 우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한 고양이, 밥을 잘 먹지 않는 고양이, 산책을 나가는 고양이... 각각의 문제에는 또 원인도 각자 다르다. 스트레스를 받아 밥을 잘 먹지 않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밥을 많이 먹는 고양이도 있단다. 때문에 고양이가 식탐을 부릴 때는 원인이 뭔지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심심해서 밥에 집착할 수도 있고, 갑상선 이상 등 실제로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해 영양분을 과잉 섭취하게 되기도 한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밥을 앞에 두고 열심히 먹는 모습은 참 귀여운데, 때로는 밥 주는 것을 제한해야 할 때도 있다니 슬픈 일이다. 하지만 적정 식사량을 제어하지 못하는 반려동물들은 소화불량이 오거나 음식을 토하기도 하고, 살이 너무 찌면 여러 질병에 괴로울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의 제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말 어딘가 안 좋아서 나타는 섭식 장애가 아닌 원래부터 식탐을 부리는 반려동물들도 있다니까.

반면 야생동물은 어떨까? ‘식탐이 있는’ 동물의 종류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돼지가 음식을 탐하는 이미지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인간이 돼지를 고기로 먹기 위해 키우다 덧씌운 편견이다. 가축 돼지가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데다 잡식이라 흙을 잔뜩 묻히고 먹이를 먹곤 하다 보니 인간 기준에서 그걸 보고 탐욕스럽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호랑이나 사자 등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은 먹기 위해 움직이지만 생존을 위한 먹음이기 때문에 이를 식탐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럼 고양이나 강아지 등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들의 식탐은 뭘까? 이것은 환경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려동물들이 먹이를 양껏 먹고도 간식을 찾고, 사람이 먹는 음식에 달려드는 것이 식탐에서 나온 결과라기보다는 역으로 음식이 있기 때문에 식탐이 생기는 것 아닐까 한다.

야생의 동물은 항상 먹이가 부족하다. 만족할 만큼 먹으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저장을 해 둔다. 먹을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에 터전을 잡고 번식을 한다. 반려동물들 또한 동물로서의 본성이 남아 있다. 음식은 매일 얼마든지 새로 구할 수 있으니까 눈앞에 있는 걸 모두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하지가 않다. 결국 주변에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달려드는 것뿐인데 그걸 두고 식탐 운운하니 억울한 고양이도 몇 마리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동물이다.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환경에서 비롯된 버릇에 너무 지나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현타 오는 나 자신에 대한 현타 때문에 우울해질 필요가 없다. ‘나는 왜 인스타를 못 끊을까’라며 자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이상 sns에 노출되는 것은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은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회사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팔로우 해 달라고 해서, 하다 못해 식당에서 인증샷 올리고 음료수 하나라도 얻어 먹기 위해서는 sns와 영원히 작별할 수 없다.

남들은 다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라며 자책할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나는 게으르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유난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사는 것일 수도 있고, 현재 나의 일상이 그렇게 바쁘지 않아도 살아낼 수 있을 만큼의 단계에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사실 부지런한 편인데도 어떤 압박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정말 내가 게으를지도 모른다. 어떻게 부지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식탐이 많은 고양이를 생각해 보자. 고양이라면 ‘나는 왜 이렇게 많이 먹을까’라고 우울해하지 않을 거다. 그 대신 ‘그만 먹어’라며 밥그릇을 뺏는 주인을 한 번 원망하고 말 것이다. 왜 식탐이 많게 됐는지 고민하고,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주인의 몫이다. 그 전까지는 그루밍을 하든 낮잠을 자든 장난감과 놀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만들어낸 걱정에 빠지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고민을 가볍게 털어버리는 일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우리가 고양이와 다른 점은 언젠가는 스스로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전까지는 문제를 문제 자체로 바라볼 수 있도록 조금 덜 생각하는 방법을 택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는 말씀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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