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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23. 2020

고라니와 프로 민폐러

너무 착 달라붙는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야생동물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동물이 살기 힘든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환경 자체를 점점 더 그렇게 만들고 있다.

나 또한 실제로 만난 동물을 헤아려 보라고 하면 몇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흔하다는 고라니도 어렸을 때 얼핏 한 번 구경했던 기억이 날까말까 한다.

그래서 '고라니'라고 하면 머릿속에 무늬 없는 사슴이 떠오르는데, 실제 고라니는 사슴보다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약간 멍한 눈에 코가 조금 길쭉하고, 어울리지 않는 뾰족한 송곳니 두 개가 튀어나와 재미있는 얼굴이다.

고라니는 산이 많은 곳이라면 의외로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와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멸종 위기 동물로 분류된다. 한국의 기후가 고라니에게 잘 맞나 보다. 너무 잘 맞아서 개체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오히려 피해를 줄 정도란다.

종종 한밤중에 고라니를 목격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울음소리가 사람 목소리와 흡사한데다 생각보다 커서 섬뜩한 기분을 준다는 감상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고라니가 주로 저녁에 폭식하는 타입이라 밤중에 농가에 숨어들어가 수확물을 먹어치우거나 밭을 망가뜨리곤 해서다.

먹을 걸 찾으러 수풀을 헤메다가 차가 다니는 도로로 뛰어들어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혹시 고라니를 치었을 경우 사고가 더 커지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지 말라는 얘기도 있긴 한데, 대처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동물을 차로 뭉개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그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인터넷에서 일부 사람들이 '자라니'라는 명칭을 종종 쓰곤 한다. 커브가 많은 산길이나 대형 트럭이 많은 고속도로 등 나타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 유저들을 두고 고라니 같다며 하는 말이다. '민폐 자전거 라이더'로 구구절절 지칭하기보다 별명을 붙여서 부르는 편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평소에 다니던 길을 인간에게 뺏겼을 뿐인 고라니와 다른 사람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는 '민폐러'들을 같은 존재처럼 취급하는 게 썩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 주변의 민폐러

어떻게 보면 한밤중에 산운전을 매일같이 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고라니 또한 꽤 민폐를 끼치는 존재인 것은 맞다. 특히 농업인들에게는 고라니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보호 대상이라기보다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한편,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의 주변에도 많은 민폐러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태계에 골고루 분포해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층간소음러'가 최대의 적이다. 독서실을 이용하는 고시생들 사이에서는 '잔기침러'나 '펜 딸깍딸깍러', '큰 소리로 노트 넘기기러'등이 민폐라고 한다. '길거리 흡연러'는 민폐를 넘어 법적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신종 꼴불견'으로 찻길에서는 신호를 무시하고, 인도에서는 보행자를 무시하는 '전동휠 라이더'들이 떠오르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 혹은 나 자신을 두고 민폐러로 정의할지 여부를 고민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한 뒤 가게에 2분 정도 앉아 있는 것은 괜찮지만 2분 10초부터는 '진상 손님'으로 구분된다든지, 무한리필 고기 뷔페에서 가게 마진이 남지 않을 정도로 고기를 먹어치우면 진상이라든지 하는 식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SNS에서는 의외로 이런 논쟁들이 하루 종일 소비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너무 가까워져서 생긴 문제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요즘처럼 남의 일에 관심 없는 세상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자립하고 있는 청년들은 5평에서 8평 남짓인 원룸에 살고 있는데, 이런 방은 대개 3~5층짜리 건물에 스무 개 이상 배치돼 있다. 자연히 벽 사이를 막고 있는 방음재들이 얄팍해질 수밖에 없고, 건물 앞에 쌓이는 쓰레기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된다. 세입자들은 서로가 내는 소음에 날카로워지고, 관리인은 쓰레기 처리를 어떻게 하라는 안내문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붙인다.

출퇴근할 때는 어떨까.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정류장과 환승 통로에서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거나 가방이 엉킨다. 하루이틀 쯤이야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흐르다 보면, 가끔씩은 작은 충돌에도 발끝부터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유모차나 휠체어, 걸음이 느린 어르신들을 보며 속으로 '민폐'나 '진상'같은 단어를 몰래 붙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과일을 먹을 수 있는 나무가 점점 없어지고, 풀길이 사라져 가는 산 속에서 고라니 또한 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먹이를 찾아 분주하게 헤메다 보니 찻길로 뛰어들거나 농작물을 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고라니는 천연기념물이 아닌 프로 민폐러가 되어 버렸다.

김백준 국립생태원 연구원님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본 것인데, 고라니의 개체수는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으로 상정하고 따져봤을 때 대략 1%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숫자에 있어서도 힘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강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고라니를 두고 민폐 운운하는 것은 조금 잔인한 일 아닐까.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민폐러들 또한 비슷한 과정에서 탄생한 경우가 꽤 많지 않을까 한다. 하루종일 피아노 연습을 하든 드럼을 두들기든 다른 사람과 떨어져 살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 단지 우리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에, 마음의 거리가 몸의 거리만큼 가까워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잔기침이 많다거나, 동작이 굼뜬 타인의 사소한 생활 패턴마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단죄하기를 그만두라는 건방진 충고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나와 남에게 시시각각 민폐 낙인을 찍는 우리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는 얘기다. 때로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라는 물음 때문에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예민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에게 조금 너그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많이 들려오는 캐치프레이즈 처럼, ‘몸의 거리는 멀고 마음의 거리는 가까운’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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