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일러스트 책을 보는데 “사자와 고양이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라는 표현이 있었다. ‘고양이과 동물을 그리는 법’이라는 문단이었으므로 이해가 쉬운 설명이긴 했으나 사자 입장에서는 좀 언짢은 말 아닌가? 비록 분류 자체가 ‘고양이과’이며 같은 포식 동물에 속하긴 하지만 스펙에서 절대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지. 작가도 이 점을 인식했는지 뒤에 가서는 “우람하게 빛나는 사자의 눈은 매우 인상적이다. 얼굴 자체가 백수의 왕임을 말해 준다”운운하며 사자의 외모를 칭송하기는 한다.
사자의 멋진 부분은 외모뿐만 아니라 습성 같은 데도 있다. 흔히 알려진 것 중에 절벽에서 새끼를 떨어뜨려 훈련시킨다는 것은 무근본하게 와전된 얘기고,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짜다. 무리를 지어 철저한 전략 하에 먹잇감을 노리고, 필요한 만큼 식량을 확보하면 더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모습은 좀 멋지다.
사자가 사람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해 체면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야생의 사냥은 생각보다 많은 공이 필요하다. 흔적을 지워 가며 사냥감 무리를 찾아야 하고, 그 중에 따로 떨어져 잡기 쉬운 목표를 노려야 한다. 발이 빠른 초식동물에게 들키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 다가간다. 먹이를 노릴 때의 사자는 2~3분 동안 10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다. 잡은 동물의 숨통을 단번에 끊고 가죽과 뼈를 헤쳐 살과 고기를 먹는다. 운좋게 사냥에 성공하고 나서도 아주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사자가 보다 비용효과적인 사냥 방법을 찾아 마구잡이로 초식동물을 학살했다면 하마나 코끼리에게 한 소리 들었을지도 모른다. 백수의 왕이니 운운하며 폼 잡는 것도 어디까지나 생태계에 도움이 될 때의 얘기다.
그들은 사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지만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고 기린처럼 덩치 큰 초식동물에게는 가끔 얻어맞기도 하면서 근근이 삶을 유지한다. 몸집이 작은 포식동물을 사냥하면서 생태계 전체의 개체 수를 적절히 조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자의 사냥 원칙은 권위자로서 의무를 가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계산에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이 고대 로마 시대 때 부터라고도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단어 자체는 1800년대 발자크라는 소설가가 처음 사용한 것이다. 단지 인류가 부자와 귀족과 권력자들이 사회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 약자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것 같은 개념을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를 가진 어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약자를 도울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대기업이 복지나 교육 시설 기부를 통해 막대한 자본의 축적을 정당화하는 것이 좋은 예다.
사자는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태계의 한 톱니바퀴를 담당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한 약자의 생존을 위한 강자의 시혜적 태도라기보다는 강자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권위자는 사회에서 퇴출당하기 쉽다. 인류는 그런 존재들이, 애써 구축해 놓은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이 크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윤리와 도덕이 결여된 권위자를 본능적으로 비난한다.
때문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신성시하거나, 그걸 실천하는 존재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보낼 필요까지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사회 환원’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게 베푸는 자에게 더 큰 보상을 가져다 준다. 치료비를 후원하고, 장학금을 주고, 대학에 건물을 세우는 커다란 회사들은 가끔 비리를 저지르거나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대량으로 해고하거나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책망받지 않는다. ‘큰 일’을 하는 회사의 발목을 잡는 그런 ‘사소한’일들은 한 번쯤은 눈감아 줘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생태계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존재들은, 사자와 달리 생존을 위해서 아주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고도 살아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팔천 원어치의 감자를 훔친 할아버지는 죄를 엄격히 물고 몇 개월의 징역형을 받아 구치소에 수감된다. 하지만 분식 회계니 차명 계좌니 해서 몇백 몇천억의 눈먼 돈을 챙긴 이들에게 수조원에 달하는 벌금이 내려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월급을 받으면, 아니 받기도 전에 4대보험과 소득세와 건강보험료가 야무지게 빠져나가는 수많은 직장인들과 달리 수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법망을 교묘히 피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권력자 또한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 구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그 힘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데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있으며, 때문에 권력자들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 이 같은 자정 작용이 제대로 이뤄지면 참 이상적인 세계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생태계는 자연의 생태계보다 허술한 공식 위에 세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허점이 많다. 오답을 정답으로 고칠 수 있을 때까지, 공식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아직 우리는 사자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