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긴팔원숭이에 대해서 알겠느냐고 물으면 더 뜬금없다. 사실 이 긴팔원숭이는 원숭이가 아니라 유인원에 속한단다. 원숭이는 영장류 중 ‘원숭이하목’이고 유인원은 영장류 중 ‘사람상과’로 엄연히 다르다. 불필요한 정보를 더 얘기하자면 긴팔원숭이는 또 종류도 엄청나게 무궁무진한데, 큰긴팔원숭이, 흰손긴팔원숭이, 하이난긴팔원숭이, 은색긴팔원숭이, 보닛긴팔원숭이, 주머니긴팔원숭이, 카오빗검은볏긴팔원숭이, 날쌘긴팔원숭이, 회색긴팔원숭이 등등등등이 있다.
특히 이 중에 하이난긴팔원숭이라는 것은 오직 중국의 하이난 섬에서만 사는 동물로, 전세계적으로도단 20여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이 예전에는 원숭이뼈로젓가락을만들기위해 마구잡이로 사냥하곤 했다는 얘기가 있다. 다행히도 하이난긴팔원숭이의 멸종을 막기 위해 전세계의 전문가들이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너무 노력했다가 마구잡이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지만 최근 들어서야 겨우 30마리 정도가 됐다고 하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이토록 구구절절 하이난긴팔원숭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도, 마음 한구석에서 ‘영장류 사람상과 유인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들불처럼 샘솟기란 쉽지 않다.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너하이난긴팔원숭이의멸종위기가얼마나심각한줄알아?’라고 따져 묻는다 해도 반성보다 얘가 오늘은 또 인터넷에서 무슨 이상한 얘기를 읽고 와서 이러나 싶은 황당함이 먼저 다가올 것이 틀림없다.
나 또한 원숭이 얘기를 이렇게까지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는 하이난원숭이의 멸종 위기 또한 다른 동물들의 멸종 위기 정도만큼만 안타깝다. 하지만 지구 어딘가에서는 하이난원숭이의 개체 수 보존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동물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이난원숭이 보호 운동이 그 지역 주민들 중 누군가의 생활 터전을 변화시켰을 수도 있고, 어떤 주민은 그 동안 이뤄진 학살에 죄책감을 가져 가치관을 바꿨을 수도 있다.
지금도열심히돌아가고있는세계의아주작은부품들은각자나름대로의의미를갖고있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우리나라에서 200명 이하로 발병되는 ‘극희귀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전국에 28곳 밖에 없다는 사실은 아시려나. 나한테는 있으나마나 한 병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일이다. 라면 끓일 때 가끔 넣을까 말까 고민하는 건더기 스프는 사실 식품영양학을 전문으로 전공한 연구원들이 맛과 영양, 변질 우려 등을 고려해 엄선한 재료를 많은 수고를 들여 건조시킨 거라든지. 좀 더 사소한 얘기를 하자면, 자주 가는 편의점에 늘 사는 음료수가 있는데 별로 인기는 없지만 나한테만큼은 세상 맛있어서 매일 간절히 단종되지 않기를 바란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모두가하이난원숭이를신경쓰지않아도좋다. 내가 지금 당장 하이난원숭이 지키기 운동에 뛰어든다고 해도 사실 별 도움이 안 된다. 하이난원숭이 또한 그건 좀 부담스럽다며 겸연쩍어 할지도 모른다. 굳이 모든 세상의 일을 알려고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딘가에서는 씨가 뿌려지고 싹이 트고 열매가 맺힌다.
세상에는하이난원숭이라는것도있구나. 그리고그걸좋아하는사람들도싫어하는사람들도있었구나. 이 정도의 마음만 가져도 충분히 여유롭다. 오래된 문방구의 장난감이라든지 도서관의 낡은 책이라든지, 남들에게 설명하자면 밑도끝도 없지만 나한테는 무척이나 큰 의미를 지니는 것 두세 가지쯤은 다들 마음에 품고 있으니까.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마주칠 일 없는 지구 한쪽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면, 삶의 다양성을 존중해 보자는 거창한 말을 강조하지 않아도 하이난원숭이는 멸종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