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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라기 Nov 19. 2020

돼지는 이용당했군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면

독립 후 부동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에서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게으른 탓에 각각 볏짚과 널빤지로 집을 짓고 셋째 돼지는 부지런히 벽돌집을 만든다. 볏짚을 말려 지붕을 엮고 나무를 베어 널빤지를 깎고 흙으로 벽돌을 구울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늑대는 단독주택 완공 후 갑자기 나타나 첫째와 둘째 돼지의 집을 복식호흡으로 날려 버린다.

어떤 책에서는 늑대가 첫째와 둘째 돼지를 잡아먹어 버리고, 어떤 책은 셋째의 지혜로 늑대를 물리치고 모두들 벽돌집을 짓고 사는 결말을 보여준다. 끝이야 어찌 됐든 ‘게으름은 나쁜 것’이라는 교훈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내용이다.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만을 두고 보면 통계적으로 돼지의 60%는 게으르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돼지의 삶은 매우 바쁘다.

일반적인 돼지의 수명은 10~20년 가량인데 먹기 위해 키워지는 돼지들은 대략 6개월 내외를 살다가 도축된다. 그 때의 육질이 가장 연하기 때문이란다. 6개월 전까지의 아기 돼지들은 다른 돼지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송곳니가 뽑히고 꼬리가 잘리며 수컷은 고환을 적출한다. 좁은 사육장은 배설물로 쉽게 더러워지기 때문에 항생제를 부지런히 맞는다. 고열량의 먹이를 먹으며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자라면 죽을 수 있게 되는데 죽은 뒤에도 돼지의 살덩이는 ‘빠른 도축’과 ‘신선한 배송’과 ‘적절한 숙성 기간’을 모두 거친 후에야 우리 입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를 받는다.

돼지 입장에서는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고기로 전환되는 비극적인 과정이 도축장에게는 ‘할당량’이 되고, 유통업체에게는 ‘시간 싸움’이 되고, 소비자들에게는 ‘양질의 제품’이 되는 셈이다.

딱히 돼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사실 우리도 비슷한 일을 겪곤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일을 떠올려 보자. 나 자신에게는 매우 큰 일이다. 친구들이 어쩌다 그랬냐고 물어보면 5분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만한 사연이다. 그런데 그게 병원에게는 오늘 입원한 환자 수가 15에서 16으로 늘어난 것 정도의 변화일 뿐이다. 남들만큼 노력해서 입사한 회사였지만, 생전 처음 만나보는 사람들과 온갖 희한한 일을 다 겪고 지쳐서 사직서를 낸 경우는 어떨까. 당사자에게는 이런저런 감상이 들게 하는 사건이지만, ‘올해의 실업률’같은 통계는 그런 사람이 한 이만 명쯤은 있어야 소수점 한 자리가 움직일까 말까 한다.

더 극단적으로 얘기해 보면 오늘 내가 지불한 입원비를 병원은 ‘실적’으로 보험회사는 ‘손실’로 나라에서는 ‘소비 활동’으로 해석한다. 힘들게 낸 사직서를 인사팀에서는 처리해야 할 업무로, 회계팀에서는 인건비 감소로, 정부에서는 실업급여 지출로 받아들인다. 돼지의 죽음이 ‘도축 실적’이라면 사람의 나고 죽음은 ‘출산율 증가’와 ‘인구 감소’ ‘고령화’ 정도로 치환된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들을 무슨 게임 아이템마냥 ‘개당 얼마’로 취급하고 공무원들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짐더미로 생각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도축업자가 돼지를 싫어해서 죽이는 것이 아니듯, 이런 일들이 누가 누구에게 악의를 품어서 벌어지는 비극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피치못할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래알처럼 되게 많고, 돈이라는 것도 어떤 기업이 몇 조를 생산하고 이런 뉴스를 보면 무지 흔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깜짝 놀랄 만한 사건도 재밌는 드라마도 완전 쩌는 노래도 아무튼 뭔가가 너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라 우리들이 돼지고기를 잔뜩 실은 냉동 트럭처럼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되게끔 노력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나와 상관없는 일들의 의미도 조금 이해해 보려 하는 것.  나에게는 아메리카노 한 잔만 사서 나가면 되는 카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터전이기도 하고 오늘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일터이기도 하다는 것. 마지막까지 사람이 꽉 찬 버스를 보면 신물이 나지만 다들 목적지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나처럼 싫은 마음을 참고 몸을 구겨넣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 같은 일이다. 팍팍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다들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내 어딘가 뾰족했던 마음이 약간 무뎌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백팩을 메고 아무렇게나 남의 어깨를 툭툭 치는 사람들 때문에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다면, 나 자신에게 같은 일을 해 봐도 충분히 좋다. 매일 일어나서 일과를 해내고 잠에 드는 나의 하루와 일주일과 한 달을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지 않는 것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움직이는 물결처럼 오락가락 하는 기분도 가끔씩 들여다봐주는 것이다. 그건 거창한 통계나 실적이 되는 숫자 같은 것이 되지 않아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유일하게 숫자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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