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오라기 Dec 07. 2020

독개구리가 부러운 왕눈이에게

우리는 모두 치열하다

1980년대 KBS에서 방영했던 만화 <개구리 왕눈이>는 지금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린 기억에(아 필자의 나이 앞자리가 노출되고 있다) 왕눈이가 피리를 부는 모습이 왠지 그로테스크하다고 느꼈던 감정이 남아 있는데 알고 보니 줄거리 때문인 것 같다.

아빠와 엄마, 왕눈이로 구성된 청개구리 왕눈이 가족은 도룡뇽의 침입과 지진이라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로 원래 살던 터전을 잃고 무지개 연못에 정착하려 하는데 참개구리인 투투를 비롯한 원래 살던 생물들의 텃세가 심해 어려움을 겪는다. 1화부터 왕눈이 아빠도 맞고 왕눈이도 두들겨 맞고 심지어 투투 딸인 아롬이도 왕눈이와 친하다는 이유로 투투에게 맞는 등 줄거리가 전반적으로 살벌하다. 당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그렇듯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미취학 아동들을 보라고 만든 건지 개구리를 통해 일본 사회의 모순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혼란스럽다.

설정상 왕눈이네는 청개구리고 투투는 참개구리란다. 세부 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청개구리가 참개구리에 비해 몸집도 작고 색도 선명해서 귀엽다. 참개구리 큰 것은 두꺼비에 가깝게 생겼다. 청개구리는 울음소리도 엄청 시끄럽다. 밤낮으로 피리를 불러대는 왕눈이의 캐릭터가 이 같은 습성에서 나온 것 같다.

아무튼 왕눈이든 투투든 공통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도룡뇽이다. 왕눈이네 가족도 도룡뇽의 침입 때문에 터전을 잃었고 아롱이의 엄마도 도룡뇽 때문에 죽었다. 이밖에도 전기뱀장어나 메기, 낚시꾼 등 다양한 적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개구리의 관점에서 다양한 생태종이 공존하는 무지개연못은 유토피아라고 보기는 어렵다.

때문에 개구리들은  부지런해야 한다. 멀리 뛰고 빨리 뛰고 높이 뛰어서 먹이를 찾고 적을 피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은 대개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개구리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천적이 없는 우물 안이 먹고 살기 편하다. 우물 밖 개구리들은 부지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게을러도 생존이 가능한 개구리가 있다. 독을 가진 종류다. 독화살개구리는 적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가 땀을 내듯 피부에 독을 내뿜어 적의 공격을 차단한다. 한국에 자생하는 무당개구리도 대표적인 독개구리 중 하나다. 이들은 천적을 만났을 때 도망가기는커녕 자신의 화려한 무늬를 과시한다. 다른 개구리답지 않은 붉고 푸른 얼룩무늬는 독을 가졌다는 상징처럼 작용해 뱀이나 새 따위를 물리치는 데 효과적이다.

청개구리 입장에서는 독화살개구리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적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우리도 독화살개구리처럼 세상을  쉽게 사는 재주 하나만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버스를 환승하거나 주차 요금을 추가로 내지 않기 위해 뛸 필요 없는 독이 있었으면. 회사에서 나에게 시비를 거는 상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독이 있었으면. 좀더 바란다면 다음 학기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는 독, 전세금이 올라도 버틸 수 있는 독 같은 것도 있다. 여튼 그다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초능력과 같은 독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우리가 요행만을 바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요령 없이 살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그렇다. 세상이 굴러가는 속도는 청개구리인 우리가 달려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빠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발을 한 번만 삐끗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모으고 자립을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탈해버리면 ‘잠깐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죽어버릴 수도 있다는공포가 우리 사회 전반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왜 나는 독개구리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왜 남보다 밥벌이할 만한 재주가 적은지. 스마트폰 하나를 사는 데도 왠지 바가지를 쓰는 것 같고 남들은 잘 피하는 것 같은 삶의 장애물이 내 앞에만 나타나고 선택은 어렵고 요령은 부족하며 나를 물어뜯는 천적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한탄하게 된다.

청개구리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독개구리로 진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청개구리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겠다. 다만 무지개연못에 사는 청개구리에게 독개구리의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는 있다. 독개구리가 독을 뿜어낼 수 있는 이유는 먹이에 있다. 중앙아메리카에 사는 딸기독화살개구리는 흰개미와 딱정벌레를 먹는데, 이 벌레들이 주로 먹는 잎에 독성 물질이 있어서 자연히 독개구리의 몸에도 축적이 된다. 즉 독을 먹는 과정을 견뎌야 독개구리가   있는 셈이다. 독을 거부하는 독개구리는 무용지물, 어쩌면 부지런한 청개구리보다 적의 공격에 취약한 개구리가  수도 있다.

왕눈이는 태어날 때부터 제가 청개구리임을 알았지만, 우리가 정말 청개구리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독을 먹고 있는 독개구리인지는 아직 모른다. 독을 먹는 과정은 아프고 괴롭지만 그것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과정이며 독을 내뿜을 수 있을 때까지의 준비 과정이다. 몸을 움직이는 생명인 이상 생존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다만 그 노력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언제쯤 효력이 나타날지를 모르기 때문에 힘든 것이며 쉬운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독개구리를 부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일주일 중 유난히 어려운 날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독을 먹는 독개구리가 된다. 오늘은 독에 대한 내성을 갖기 위해, 언젠가 만날 더 강력한 상대를 쉽게 물리치기 위한 독을 갖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치열하고 아름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