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최선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차선은 우리를 안심시키는 대안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책은 결국 최선을 다하지 못하기 십상이라, 차선은 최선의 적이 될 가능성이 다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가끔 우리는 정말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지, 나태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거울에 비춰볼 필요가 있다. 최선이라는 기준은 개인에 의해 판단되며 모호한 것이지만,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묵묵함' 그리고 '욕심'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워도, 같은 일에 꾸준히 일정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다소 인색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선이 백 퍼센트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도 실망하기도 한다. 실망하기가 두려워 지레 겁부터 먹고 온 힘을 쏟지 않았을 수도 있고, 굳이 최선이 아니어도 차선에 만족하는 것으로 끝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차선이라도 이룰 수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 여기서 말하는 차선은 최선의 바로 다음, 즉 두 번째 것이라고만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차선에 차선의 것들을 얻을 때도 많다. 예를 들면 인간관계, 또 다른 기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 노하우 등 어쩌면 최선 이상의 가치를 논할 만한 것들이다. 어떤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해도 이로부터 얻은 용기나 방법으로 다음에는 최선보다 더 나은 최선을 기울일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꾸준히, 매 순간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내 욕심을 채울 만한 노력의 결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우리가 숨 쉬는 이 공기마저도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최선을 다해 숨 쉬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듯한 이 산뜻한 공기의 움직임조차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사소하고 당연한 것에도 한 번 최선을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최선이 아니더라도 값진 차선의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럼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최선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이 차선의 것은 마음에서 지우고, 무엇에 최선을 다해야 할지 갈 길을 잃었다면 사소함에, 일상에, 당연한 순간에 끈질기게 달려들어 보자. 그럼 또 한 번 알게 된다. 내가 최선을 다했거나, 그러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로 나뉜다는 것을. 차선은 최선의 적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