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난 9시 1분에는.

by Something

아침이면 마주할 그 시간에.

어쩌면 헐레벌떡 들어올 그 시간에.

덩그러니 남은 빈자리와

이별을 고한 작은 편지 두 장.


내일 만날 것처럼

혹은 긴 휴가에 들어간 것처럼.

저 문을 열고 다시 들어올 것만 같은 9시 1분.



인턴들이 떠났다.

그리고 다른 회사를 찾아 친한 분이 또 떠났다.

연말의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마지막 남은 날을

바라보는 게 더 슬퍼져 간다.


놓친 점은 없는지, 일은 제대로 끝냈는지.

한 참을 정신없이 달려온 이때에

멈춰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함께 일해온 사람들이 없다.


나는 항상 떠나는 입장이었다.

인턴을 하고 파견직을 하면서 잠시 머물다 떠났다.

왜 이들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지.

왜 사람들을 저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떠나는 사람은 몰라.
남은 사람만 헛헛하지.
그러다 또 다른 사람이 오고,
또 떠나고.
남는 사람들 한테도 이별은 참 잔인해”


친했던 분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동안 이별이 힘들어서 거리를 뒀었는데,

너 때문에 난 또 힘들어져 버렸다고 하셨었다.


내가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니까 이해가 된다.

점점 온전한 마음을 주지 못하게 되는 것 같고,

어차피 곧 헤어질 사람이지 않냐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턴도. 파견직도. 회사에서 만나는 그 누구도 서로의 이별을 생각하고 일하지 않았다.

이별을 생각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었다.

그때 ‘내가 참 바보 같구나’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다시 한번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알면서도 그 위험을 무릅쓸 때가 있다 한다.

예쁜 아이를 낳을 때 고생한 산모가 다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다가도, 아이의 미소 한 번에 그 아픔을 잃어버렸다 한다.

그래서 또다시 아이를 낳게 된다고.

달콤한 간식도, 치킨도.

먹고 나면 후회하겠지만 일단은 먹고 본다.


예전에 인턴 때 일이다.

내 기준에서는 알바로 들어온 그 아이한테

정말 잘해줬었다. 사실 같이 단기로 일하면서 못해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거짓말하고 실수한 부분이

내가 시킨 것이라고, 부모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부모는 나에게 왜 그러셨냐 했다.

난 너무 당황했었고,

내가 시킨 일이 아니라 말했다.


좀 쉬다가 나오겠다는 그 아이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우리가 자리를 비웠던 점심시간에

부모님께서 대신 퇴직 절차를 밟으셨다 했다.


떠난 사람은 그만이지만, 난 엉망이 되었다.

배신감도 배신감이지만 사람에게 잘해주면 안 된다는 걸 진심으로 새겼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다신 그 누구를 챙겨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사람에 대한 정이 떨어진다.

걱정돼서 전화기만 붙잡고 있던 나에게

들려왔던 건,

우리 얘한테 왜 그랬냐는 그 말이었다.


이후에 다른 알바가 왔고, 나도 모르게 거리를 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온 그 알바가 내 앞에서 울었다.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왜 너는 나한테 말도 안 걸어주냐고.

혹시 나를 싫어하냐고.


그땐 참 이걸… 어쩌나 하며 모든 생각이 멈췄었다.

사랑 고백도 아니고. 이것 참.


내 앞에서 우는 그 아이한테 미안했다.

내가 상처 받았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니었다.


사실은 이런 일이 있어서 너에게 잘해주지 못했다고 말하며 너도 나에게 그럴까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나랑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 그만 울라고 했다.


참. 내가 뭐라고.


그때 이후로 잘 지내서 결혼식까지 갔다 왔다.

연락을 하고 있지 않지만, 메신저로 보이는

다복한 사진에 흐뭇하기만 하다.


사람이 떠난 9시 1분은 언제나 헛헛하고
사람은 존재하지만 마음을 떠나보낸 공간의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떠난 다는 것은 서로에게 힘든 찰나를

이겨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소나기가 아닐까.

많은 소나기를 맞고서야 이겨내야겠다고 말해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소나기 맞으며 서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있던 경험으로 잘 취직했다고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는

따뜻한 무지개를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잘 버텨보는 게 어떨까.


다행히 오늘은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곳에 취직했다고

보고 싶다는 소식을 전한 따뜻한 무지개가 떴다.

어두운 먹구름이 지나

환한 햇살 가득히 곧 만나기를.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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