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가 보였고, 나는 이름을 불렀다.

by Something

오월이 되면 나의 소중한 친구의 생일이 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어디선가 향긋한 라일락 향기가 난다. 어떤 것이 먼저라 할 것 없이, 잊고 있다가도 잊지 못하게 하는 알람이 되었다.


얼마 전 같이 놀다가 집에 가는 길에 라일락 꽃이 피어있는 나무를 봤다.

“저렇게 큰 라일락 나무도 있나 봐~”

“저게… 라일락 나무가 아닐걸?”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인터넷에서 어떤 것을 봤다고 했다.

그 다음날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등나무!! 어제 우리가 본 나무는 등나무야”

“등나무??”

처음 들어보는 나무 이름이었다. 등나무 꽃이 늘어지게 피는 것이 참 예뻐서, 한참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라고 소개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주말에 병원을 가러 나가다가 근처 산에서 있는 등나무가 여럿 보였다.

‘저것도 등나무~ 여기도 등나무!’

새삼 보이기 시작하니 나무 찾는 재미가 있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이름을 가지게 되면 서로에게 인지가 되는 것이라 이해되었다. 몇 번을 오가며 봤을 아무것도 아닌 나무가 “등나무”가 되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인지한다는 것은 다양하다.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을 통해서, 혹은 이름을 불러보면서, 만지면서, 냄새를 맡아보면서 등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나는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해 대학교 때는 술을 같이 먹고 재미있게 놀았음에도, 다음날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곤 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꼭 지나가고 나면 얼핏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을 때다. 매우 뚜렷한 특징이나 뭔가의 독특한 포인트가 없으면 대부분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방에게 미안한 상황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난 일에 언제까지나 미안해할 수도 없다. 언제나처럼 소심한 나는 상대방이 정리해야 할 몫을 나에게 가지고 오고 있다. 내 손을 떠난 문제는 상대방이 해결할 일이다. 이런 기억도 상대방에게는 기억나지 않는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내가 할 일은 이런 일이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한편, 신기하게도 나의 소중한 엄마는 한번 스친 사람까지도 기억하는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이름은 몰라도 어디 나왔던 사람까지 기억하신다. 장사를 하시는 엄마는 한번 오셨던 손님의 취향을 파악하고 “저번에 드셨던 그걸로 드릴까요?” 하거나, “또 오셨네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 상대방은 나를 기억해준다며 고마워한다. 그래서 단골이 많고 장사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신다.


이런 재주가 없는 내가 사람을 구분할 때 쓰는 방법 중 하나는 “목소리”다.


내가 처음 내 가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디서 흘러들었던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지나쳤을 그 목소리가 나에게는 기억에 남아서 누군지 찾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목소리를 통해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나의 학창 시절이 다 담겨있는 그 가수의 노래는 묘하다.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시절에 그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시간과 기억이 모두 그 노래에 저장되어있다. 좋았던 기억도, 애써 지우고 싶은 기억도.


콘서트장에서 춤추며 신나게 들었을 때, 컴백하기 전에 노래 익힌다고 산책하면서 들었던 그 노래, 예전에 앨범 콘셉트 듣고 놀라서 침대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노래 하나에 많은 추억이 담겨있다. 멤버가 많은 아이돌의 경우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뮤직비디오 혹은 음악 방송을 통해서 누가 불렀는지 확인했다.

그냥 마음에 드는 편안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참 좋다. 비트가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노래를 듣는 이유에는 목소리가 주는 힘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리가 안녕을 말할 때도 좀 더 다정한 목소리가 있고, 옛다 하는 식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마스크로 얼굴을 보지 못할 땐 그 목소리 만으로 사람을 상상해보게 된다. 어떤 사람일까? 이성적 관심은 아니더라도 우린 목소리만 들으면 어떤 사람일지 호기심도 생기고 짐작도 해보게 만든다.


목소리가 주는 힘이 참 대단하다 싶다.

별거 아닌 일에도 다정함이 추가된 목소리가 전하는 그 말에는 엄청난 위로가 담겨있다. 목소리가 좋다는 것에는 취향 차이가 있을 것인데 본인들이 좋아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게 답이다.


사람마다 인지하는 부분이 다 다를 것이다. 목소리로, 향기로, 얼굴로, 옷 스타일 등등 어떤 것을 인지하는 순간 새롭게 다가온다.

인지를 한 순간도 어쩌면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갈 수 있다. 인지를 했다 해도 영원하진 않다. 내가 인지했던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나, 찰나의 기억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 이름도 목소리도 사람도 의도하지 않던, 의도했던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할지라도 우린 그것을 바꿀 수 있다. 인지되었던 것을 인지되지 못하게 무시할 수 있다. 그러기에 무언가를 인지를 하고 불러본 다는 것은 어찌 되었던 미지의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하는 시작인가 보다.


어떠한 사람, 물건, 길가의 돌멩이 하나에도 이름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이름을 붙이면 내 것이 되고 달라지고 바꿀 수 있다. 좋은 것은 좋게 남아있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스치듯 지나가길 바라거나, 우리가 지워야 할 것으로 다르게 인지해서 바꾸면 될 것이다.


이름 그 자체의 근원적인 것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름의 다른 이름은 물음이지 않을까.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일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 소중한 존재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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