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을 좋아하던 이유는 떠난다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힘든 시련과 고난은 참으로 반복되고 두서없이 다가온다. 이들에게도 휴식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언제나 존재감을 뿜 뿜 하며 씩씩하게 달려온다. 그럴 때 들려오는 천국으로의 초대장.
“우리 여행 갈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같이 갔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와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좋다.
어디든 떠나면 알게 된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못 먹어봤던 음식도 먹고, 남 들 다 찍어본다는 곳에서 인증 사진도 찍어본다. 한때는 그 인증 사진이 고파서 여행이 좋기도 했고, 평상시 못 입었던 옷이나, 액세서리를 보다 자유롭게 해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내가 여행을 좋았던 이유는 여기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반복되듯 편안한 일상을 벗어나고, 회사 일, 집안일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도망쳐 잠시나마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한다.
좋은 침대에서 일어나 잘 차려진 식탁에서 한적한 식사를 하고, 맘에 드는 옷을 입고 쇼핑도 하고 길거리 구경도 한다. 거기에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한다면 그곳은 참으로 천국이다.
그러다 여행 일정이 끝나 집으로 가야 하는 날이 되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잘 빠져나온 그곳으로 어쩔 수 없이 다시 들어가야 하니 싫을 수밖에.
우리는 늘 집에 오는 길이면 말이 없다.
돌아오는 그 길에는 더 놀고 싶다는 아쉬움도 있고, 어쩌면 왜 돌아가야만 하나 싶은 약간의 서글픔도 느껴진다.
아마도 요정이 만들어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신데렐라의 12시 종소리가 그렇게 들리지 않았을까.
“여러분. 여행을 도피로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저 휴식을 취하러 간다 생각하시고 돌아오세요. 여행은 돌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힘차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 오는 겁니다.”
전시회를 갔다가 내가 좋아하는 분의 짧은 강연에서 듣게 된 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이 해주신 말이라 한참을 되뇌며 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했다. ‘왜 이런 말을 하신 걸까. 여행은 도망가는 거지! 잠시라도 이 힘듦을 잊어야 하는 거잖아!’
친구와 잠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서로가 일상에 지쳐 최소한의 계획만을 가지고 푹 쉬다가 오기로 했다. 그때 여행으로 도망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났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말라……
여행 갔다가 돌아오기 싫었던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을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여행을 떠난 그 잠시 동안이라도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도망치는 거 아녔겠는가.
갔다 온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기에 이번에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떠나보기로 했다. 바뀌지 않을 현실에 도망치듯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내가 일상을 평안하게 지내기 위할 힘을 얻기 위해 떠나보는 것이다.
충전을 위하여 출발하자.
편안한 침대와 맛있는 음식과 여행에서 누리는 기분 좋은 일들을 다 누려보고 집으로 오는 길이 새삼 달랐다. 변함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 길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일의 퇴근길 같았다.
그저 더 놀고 싶음에 다음을 기약하기만 할 뿐, 서글픔 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모를 비워져 있던 에너지 박스가 채워지 듯 어떤 기운도 났다. 도망치지 말고 얻어오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싶었다.
알고 행하는 것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속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도전일 것이다.
변하지 않아 아름답다는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하다는 의미는 저 하늘에 떠있는 달과 같다.
달에 맹세하는 로미오에게 영원하지 않기에 달에 맹세하지 말라는 줄리엣처럼 영원이 영원하지 않음을 바라는 바람도 존재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일 듯하다.
현실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탈출을 말한다. 진실로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지친 일상이 무료하여 잠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공기주머니처럼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있다.
떨어지지도 않고 특별히 있어서 좋은 점도 없지만, 항상 옆에 귀찮게 붙어있다.
결국 우리는 현실에서의 도망도, 변하지 않는 것과 변화하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렇게 서로가 함께하는 방법을 찾는 것 같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통해 아슬하게 버티는 오늘을 내가 견딜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