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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Aug 19. 2023

아, 이년아 그럼 자가용 타고 다녀!

약자인 여성의 폐해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으며 귀를 열어 들을 수 없다

요즈음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20대일 때에는 지하철에 성추행범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1호선은 출근 때마다 전쟁이었다. 여성의 뒤에 바짝 붙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거나 은근히 치마를 들추는 등 지면에서 말하기 곤란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때 나와 목격자들이 취한 행동은 그놈에게 질타를 한 것이 아니라 피해 여성에게 다가가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나름 한마디를 던진 것이었다. 그것은 용감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나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이다. 지금도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때 나는 가해자에게 가서 도대체 왜 그러냐 그런 짓을 왜 하느냐고 강하게 따졌어야 한다.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약자에게 더 따뜻한 말을 건네고 가해자를 강하게 질타했어야 했다. 그때 우리는 누구도 가해자를 질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섭고 두렵고 큰소리 날까 봐, 창피함에 말 한마디는커녕 찍소리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싫은 표정만 짓는 소극적 행동이 전부였다. 


대항하거나 항의하기에는 지하철 안이 너무나 복잡하고 비좁고 또한 가해자와의 거리가 아주 긴밀하게 가까운 까닭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피하고자 하여도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용기 있는 사람이 무어라 항변하면 

“아, 이년아, 그럼 자가용 타고 다녀”,

 “여기가 네 집 안 방인 줄 알아?”,

 “못생긴 것들이 더 큰 소리야. 너 같은 건 건드리지도 않아.” 

반말 지꺼리는 물론 욕설과 비하와 인격모독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큰소리치는 놈은 분명 성추행한놈 맞다. 만약 자기가 잘못해서, 또는 본의아니게 만지게 되었다면 바로 미안하다고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놀이터를 지나다 보면 초등학생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가관이다. 그들도 이미 체득한 약육강식의 착실한 실천자가 되어 있지 않은가? 약자를 더욱 짓밟고 놀리며 손가락질하고 발을 구르며 깔깔 웃는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약자를 편드는 일은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수모를 당할 수도 있으니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용기를 내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말린다. 오지랖이 왜 그리 넓으냐, 웬 참견이냐, 괜히 끼어들었다가 큰코다친다는 둥... 


용기 있는 자의 날개를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려 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모두 구경꾼이 되어 있다.     


우리는 약자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또한 그들을 경멸한다. 못난 사람들이니 도와줘봐야 자신만 피곤하고 다칠지도 모른다는 약삭빠른 계산에서다. 심지어 가난 구제는 나라도 할 수 없다면서 외면한다.

    

사람들이 계산 적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타인을 돌볼 줄 모르고 존중할 줄도 모르며, 도와줄 줄 모른다면 그것을 우리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약자에게 뭉근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2차 피해자들을 위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무관심하던 마음 씀씀이도 이 따뜻한 말 한마디로 변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습관적으로 2차 피해를 가하면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 지점이다.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판단중지가 필요하다. 우기고 뻗댈 일이 아니다. 잠시 모든 것을 유예시키고 판단을 유보하여 무엇이 잘못인지 왜 판단중지가 필요한지 재고하여야 한다. 약자들에게 뭉근한 말 한마디 건네고 배려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지향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계간 <연인> 2019년 여름호 기획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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