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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Aug 24. 2023

잠재적 피해자, 잠재적 가해자, 강남역 10번 출구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여성 혐오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출구가 없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침묵으로 여성 혐오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의 현장에서 필리버스터는 여러 번 들어봤어도 성폭력 필리버스터는 낯설다. 성폭력 필리버스터란 무엇인가?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여남 공용화장실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살인자는 화장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6명의 남자는 지나쳐 보내고 7번째로 들어온 첫 번째 여성을 살해했다. 미소지니(여성혐오)에 의한 사건이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살인자는 김성민(당시 34세)으로 2017년 4월 13일 상고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살인자는 “사회생활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했다.”라고 경찰에 진술하였다. 사실 남성에게 더 무시를 당했을 테지만 유독 여성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남성우월주의 때문이다. 이에 강남역 10번 출구에 많은 사람이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침묵으로 여성혐오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이제껏 죽을까 봐 못했던 말들, 이젠 ‘죽을 각오’로 외치겠습니다.

여성을 향한 표적살인입니다. 묻지 마 살인이 아닙니다.-여성혐오에 기반한 범죄입니다.

남 일이 아니라 나의 일입니다. 오늘도 우연히 살아남았습니다.

여자를 죽이지 마세요. 여자를 강간하지 마세요. 이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

그 시간, 그 자리에 없어서 살아남았다.

내가 죽은 거 같아요. 생존 아닌 삶을 달라.

당신은 죽었고 내가 살아남았다. 

남자가 무서워서 또 다른 남자가 나를 지켜줘야 하는 것, 절대! 네버! 원하지 않습니다.


살아남았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남자들은 여기서도 여자들을 가르치려 한다.

남성으로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여성 혐오를 멈춰주세요. 공감할 수 없다면 침묵이라도 해주세요.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었던 포스트잇 중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은 많은 것을 상기시켰다.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로서 느끼는 두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에 “당신의 죽음이 결코 또 다른 ‘한 여자’의 죽음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또한 여성혐오 범죄와 관련 콘텐츠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잖아.’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이후 이곳에서 성차별 성폭력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기에 이른다. 당시 디지털 성범죄와 동영상, 미투가 더해지면서 시행되어 많은 호응을 얻었다. 여성이기에 겪는 일, 그해 6월에는 이를 기록한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각종 미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역사는 지도자나 큰 사건, 지도자의 치적이나 이긴 자의 기록 등 흔히 영웅들의 기록한다. 또는 아주 큰 사건만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 외의 많은 것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기록되지 않으며 기록된다 하여도 그 기록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기록은 바로 그러한 역사를 수천 년 거쳐 오면서 구조화되고 공고히 다져져 차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를 옹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나 평등의 사회로 가는 지금,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로 살아야 하는 두려움에서 아직도 벗어날 수가 없다. 


아직도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뒤돌아보고 지하철을 타면서 남성이 없는 자리를 찾고 택시를 타면서 안부를 전한다. 여성에겐 아직도 출구가 없는 것이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나무연필, 201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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