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쉽지 않은 엄마 노릇
갑자기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간절히 원하고 원해서 엄마가 되었다. 엄마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가지려 배란 주사를 맞고 힘들고 아팠던 난자 채취 과정도 견뎠고, 상급 배아를 골라 골라 이식했다. 나는 그렇게 엄마 되기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고, 태어나 보니 나라는 사람이 엄마로 결정되었다.
한 번씩 정말 내려놓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 가슴에 새겼던 마음의 한 줄을 꺼내본다.
“아이를 낳은 것은 내 선택이지만
아이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 맞다. 우리 아이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지.’
오늘 아침에도 나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려고 온 몸의 에너지를 사용했다. 이런 생각을 자꾸만 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겠다..
아침 등원 길은 언제나 전쟁과 같다.
아침에 눈을 떠 세상 모든 것을 탐색하고 싶고, 뛰어놀고 싶을 텐데 그 모든 것을 등지고 4살 아이가 매일 같이 어린이집 버스를 타고 등원을 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겠지. 그래서 늘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버스 타기 직전에 시간을 딱 맞추어 나오려고 노력하는데 오늘은 하필 버스가 딜레이 된다는 연락이 왔다.
아침엔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들고 옷이 젖을까 봐 조심조심 걸어가는 아이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상상을 하면 아이가 그렇게 해줄 것만 같았다.
“엄마, 나는 비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빗속에서 춤을 춰요.!”
마치 노래 가사나 책의 한 구절처럼 낭만적이지만 절대 나에겐 낭만적이지 않았다. 등원 버스를 타기 전 이미 옷과 머리카락은 젖어서 엉망이었고, 예쁘게 꽃 아준 머리핀들은 자리를 잃은 채 머리카락 중간에 흘러내려앉았다.
그뿐이랴, 아침에 촉촉이 내려준 비가 만들어낸 웅덩이마다 마치 출근 도장 찍듯이 다 들어갔다 나오며 주변에 서있는 다른 아이 앞에 있는 웅덩이에 폴짝 뛰어 들어가 옷을 젖게 만들기까지 했고, 주의를 주어도 절대 멈추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나는 슬슬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지만 더 크게 혼을 냈다가는 그 자리에서 울어버려 등원에 지장이 생길까 싶어 일단은 조금 참기로 했다. 사실 이럴 때 늘 고민이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훈육은 그때그때 해야 할지, 기분 좋게 등원시키는 게 맞는 것인지..
설상가상 버스는 10분 이상 딜레이 되었고, 나에겐 10분이 아니라 그 시간이 1시간 같았다.
“차도에는 가면 안돼, 차가 오면 위험해”
“어어~ 친구 있는데 물 튀기면 안 돼”
“우산을 써야지 머리가 다 젖는다~”
“멀리가지마 !! 곧 버스가 올 거야”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내 표정이 굳어 있음을 느낀다. 눈은 그 표정을 더 사납게 만들었을 터. 아이는 내 눈치를 살폈지만 흥분한 상태로 피해를 주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규칙 알려주기를 가장한 잔소리를 멈추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어서 노란 버스가 보이기만을 빌면서…
다른 엄마들은 아침마다 실랑이하는 나와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떨 때는 안쓰러워하기도, 불편해하기도 했다.(나에겐 그 모든 것이 더 불편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드러나는 표정들을 보면 나 역시 너무 불편했다. 왜 늘 나만 가만히 있을 수 없을까… 어딜 가든 나만 이렇게 아이 뒤꽁무니를 쫒느라 힘이 들까.. 마음이 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비교”라는 것을 하니 더욱 불편한 감정들이 올라오고,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마구 섞이고 있었다.
버스는 정해진 시간보다 1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고, 줄 서서 버스를 타는데 순서를 지키지 않고 제일 먼저 타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제일 마지막에 타서 창밖으로 엄마의 표정을 살핀다. 눈치는 보이는 모양이다.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알긴 하지만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가 앞서기에 질서나 규칙은 아직 지키기 어려운가보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들고 있는 우산을 바닥에 내려치며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날 보며 눈치 보고 웃어달라는 듯한 아이 표정을 보고 말을 듣지 않는 안면 근육을 미소로 바꾸려 애쓰며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아이는 계속 눈치를 보더니 엄마가 손을 흔드니 손으로 뽀뽀를 하고 후~ 하며 나에게 보내준다.
아이의 버스가 멀리 사라지기도 전에 뒤돌아 얼른 집 쪽으로 향한다. 엄마들의 길거리 아침 수다가 이어졌지만 들리지 않는다. 먼저 간다는 인사와 함께 얼른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차에 도착하기도 전에 계단을 내려오며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그 눈물 속에 참았던 내 감정이 녹아 줄줄 흐른고, 차에 타자마자 엉엉 울어버렸다. 내 눈물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터진 김에 한참을 울어버렸다. 그리고 글을 쓴다. 써야 살 수 있다. 그래야 지금까지 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고 무늬만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게 울 일이야? 싶겠지만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다..
“아이와 엄마 둘 중에 하나는 어른이어야 한다”
내 안의 치유되지 않은 아이도 아직 있지만 그래도 내 아이에게만은 내가 어른이 되어야지,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그 안에 상처 받은 아이가 남지 않도록… 이런 생각들로 하루하루 정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오늘도 내가 선택한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아침부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좀 갖도록 해야지. 운동을 하고,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달콤한 디저트와 차를 마시며 비 오는 것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야지.
내가 채워지고 내가 숨을 쉬어야 아이에게도 다시금 좋은 감정을 채워줄 수 있겠지.
엄마가 좋은 기분과 생각을 가득 채우고 하원 하는 너를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할게 “사랑하는 우리 아가, 오늘 하루 잘 보냈니?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