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여행기를 시작하며

by perezoso

2020년 5월 26일.

남편과 나는 드디어 제주에 도착했다.


6시간이 넘게 완도까지 운전을 해 가서 난생처음 제주도로 가는 큰 배의 갑판에 앉아있자니, 그간의 우여곡절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여기, 아름다운 섬에 기어이 왔다는 사실에 왠지 안도감이 느껴졌다.

40대 진입을 앞두고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던 일을 실행하자. 더 미루지 말자!‘는 마음으로 나는 해외 장기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었다. 멀쩡히 일하고 있던 남편을 열심히 꼬드기고 구슬려 설득에 성공한 후 우리는 올해 3월에 출발하기로 했다. 큰 배낭과 등산화를 사고, 세계지도를 사서 침실 벽에 딱 붙여두었다. 몇 가지 예방 접종을 받고, 세부적인 일정을 이리저리 고민하고 바꾸기도 하며 출발일을 기다리던 시간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감염병의 소식은 사그라들 줄 몰랐고, 설마 했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계속 기다리기도, 그렇다고 바로 포기해버리기도 애매하던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며 원래의 계획을 무기한 보류하기로 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고 있던 우리는 우연히 본 어느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해 활로를 찾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캠핑이었다. 코로나 시대에도 잘 맞는 형태의 여행 같았다.

열심히 검색을 하고 발품을 팔아 마침내 결정했던 건 바로 카라반! 왠지 낭만적이고, 텐트보다는 안락할 것 같으면서, 숙박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길게 보기로 했다. 작은 우리 차로 끌 수 있는 소형 카라반들 중 내부가 비교적 널찍하고 선루프를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는 모델을 드디어 선택한 후 한 달간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기대에 부풀었다.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새 물건을 받아서 첫출발을 해보기도 전에 카라반의 천정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하고 말았다. 업체에 따지고 화를 내고, 소비자보호원에 문의를 하고, 관련법을 찾아보고, A/S를 맡기고... 괴롭고 속상하던 며칠이 흐른 후, 수리한 차를 다시 받으러 갔을 때 차에서 또 물이 새는 것이 확인되었고(이런 걸 바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 거였구나), 결국은 전액을 환불받는 것으로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견인장치 설치비와 자동차 취득세는 돌려받지 못했다.)

이런 난리 끝에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이니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그야말로 ‘이불 밖은 위험’하고, 집 안에 얌전히 있는 게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이 시기에,

끈질긴 훼방꾼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계획이 틀어지고 일이 꼬이던 몇 달의 시간 끝에 우리는 그래도, 지지 않고 이곳에 왔다.

짧게 와서 머물 때마다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었던 아름다운 섬, 제주도.

언젠가 샀던 예쁜 그림엽서에 적혀있던 문구처럼 ‘언젠가는 제주에서’ 오래 머물면서 지내보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었는데, 그 바람대로 우리는 여기에 왔다. 돌아갈 날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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