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한라산 등반기
몇 년 전 겨울의 일이다. 한라산에 한번 올라가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제주도에 왔으나, 유례없이 쏟아지던 폭설로 인해 한라산 출입이 전면 통제되어버려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여러 차례 제주에 놀러 왔을 때에도 늘 바다를 즐기기만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니 이번이 기회라고, 한라산 정상까지 꼭 가보자고 남편과 뜻을 모았다.
D-day 전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그 날은 서귀포 안덕면의 근사하고 비싼 숙소에서 한라산 근처의 저렴한 숙소로 옮겨온 첫날이었는데, 좁은 공간과 계속해서 귓가를 맴도는 모기 소리,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 등이 합쳐져 나는 잔뜩 예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등반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3시가 넘어서까지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던 것이다.
오래간만에 불편한 밤을 보내고 나니 이전 여행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2014년에 다녀왔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주로 생각났다. 나는 그 여행을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시도‘ ’ 내가 경험했던 최고의 여행‘ 등으로 미화해서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때도 실은 (당연히도) 여러 불편함과 고됨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알베르게(순례자들이 저렴한 비용을 내고 함께 자는 공동 침실)에서 밤마다 울려 퍼지던 순례자들의 코 고는 소리, 베드 버그(빈대)에 대한 공포와 몸이 근질거리던 찝찝함으로 인한 불면의 밤들, 결국 손등에 생긴 징그러운 일렬 모양의 벌레 자국, 우비를 입고 세찬 비를 맞으며 걷던 시간들과 갈수록 심해지던 무릎 통증, 점점 커지던 발가락의 물집을 터트리던 밤... 이런 생고생들을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내 집에서 바닥에 배 깔고 누워 tv를 보고 빈둥대고 먹고 싶은 음식을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그 안락함을 얼마나 그리워했었는지.
불편함이란 실은 여행의 동반자일 때가 많다는 진실을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밤이었다.
아니, 편한 일상에서 떠나 일부러 조금은 불편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 여행인 건지도 모르겠다.
계획보다 늦게 일어난 탓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래도 원래 계획대로 등반을 하기로 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와 성판악 휴게소를 향했다.
아침 8시 반경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날씨가 좋았고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 한적했다. 햇살이 반짝거리고 예쁜 새소리가 들리는 평탄한 길을 걷고 있자니 숲이 주는 기쁨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성판악 코스는 시작점부터 백록담까지 9.6km의 거리였는데, 마지막 대피소인 진달래 대피소에 오후 1시까지는 도착해야 정상에 가는 것이 허용되는 상황이었던 것. 마음이 급해졌다. 평소 스스로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오늘 백록담을 볼 수는 있을지 걱정하며 열심히 걸었다.
평탄하고 즐겁던 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결국 끝도 없는 계단과 돌길을 거친 호흡음을 내며 계속 올라야만 하는 긴 시간들이 이어졌다. 풍경도 그리 다채로운 편은 아니었는데 시간의 압박까지 있다 보니 이마저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다. 돌 사이에 핀 꽃들을 발견하고, 바람에 살랑대는 초록색 잎들을 보며 즐거워할 시간이 말이다. 돌길이 많다 보니 시야를 주로 발에 두고, 돌의 편평한 면을 찾아 발을 디딘 후 앞으로 쭉쭉 나가는 일만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재 위치와 앞으로 더 가야 하는 거리를 안내해주는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확인하며 걸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가까스로 진달래 대피소를 오후 1시 전에 통과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백록담까지의 구간 중 마지막 부분은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근사한 풍광을 보여주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사방이 확 트여있어 제주 전체의 풍경이 내려다보였고, 수없이 많은 오름들이 눈앞에 펼쳐져있는 모습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여기저기에, 일부는 쓰러져 있는 상태로 보이던 고목들은 황량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드디어,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기쁨보다는 기진맥진과 안도감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진이 다 빠져서 잘 웃어지지도 않는 얼굴로 겨우 기념사진을 한 장 박고는 정상에 앉아 잠시 쉬었다. 백록담에는 생각보다 물이 적어 기대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고 왠지 아쉬웠다. 정상에 다 와서도 시간의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2시 반까지는 모든 사람이 다 내려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 떠날 때까지 계속 안내방송이 나왔고, 결국 우리가 마지막 주자가 되어 하산을 시작했다.
보통 산을 오를 때에 비해 내려가는 발걸음은 조금 가볍게 마련인데 한라산은 그마저도 달랐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정말 끝이 보이질 않았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성판악 휴게소 주차장에 다다른 시간은 오후 7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정말 징하고 지루한 산행이었다.
워낙에 체력이 신통치 않고 힘든 것도 싫어해서 등산을 수월하게 하거나 진심으로 즐긴 적은 거의 없었지만, 한라산은 특히나 쉽지 않은 산이었다.
이번 산행을 하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한라산 정상에 한 번은 가봐야지’ ‘백록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겠어’라는 목표를 세우고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날의 고생을 사서 했다. 그렇지만 그 목표란 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남들에게 자랑거리로 이야기하기 좋으니까? 한라산 정상을 밟았다는 인증 사진을 박아두려고? 한라산을 볼 때마다 ‘한 번은 가야 하는데’하고 생각하던 미련을 없애기 위해서?(어쨌든 이 부분은 확실히 해결되었다.)
나는 원래부터도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지만 이번 등산을 통해 평소에도 생각하던 단순한 진리가 다시금 확인되는 것을 느꼈다.
‘목표 달성보다는 과정의 즐거움이 무조건 더 중요하다.’
오후 1시 전에 대피소에 도착해야만 하는 압박감으로는, 효율적인 산행을 위해 돌을 잘 밟고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내 발과 땅바닥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등산의 과정을 즐길 수가 없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빨리 지나쳐야만 하는, 일종의 방해물이 된다. 만족감과 행복은 정상 도착 이후로 미루어지고, 현재는 참고 버티면서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어떤 상태가 되고 만다. 이건 아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정상을 밟으면 뭐가 달라지나?
500km를 한 달간 걸어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허무함에 가장 가까웠다. 성당은 아름다웠고 일정을 마친 후 대성당에서 봤던 향로 미사는 인상적이었지만, 순례길 걷기가 무사히 끝났다는 게 감사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쁨이 극대화되는 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즐거운 순간들은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중간중간에 있었다. 힘들게 걸은 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알베르게 앞마당에 앉아 햇볕을 쐬며 쉴 때의 달콤함과 만족감, 걸으며 길에서 만난 이들과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사과나무에서 빨갛게 잘 익은 열매를 함께 따먹던 시간, 배낭을 들쳐 메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의 설렘과 누군가의 휘파람 소리, 콧노래를 부르며 걷던 아름다운 길의 풍경들, 걷는 중간에 bar에서 쉴 때마다 빼놓지 않고 마셨던 콜라의 기막힌 맛 같은 것들 말이다.
정해진 길을 걸으며 계속 다음, 그다음의 단계를 밟는 과정을 따라가야 했던 20대에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고 자주 느꼈었다. 30대 이후에는 '나'라는 개인의 욕구가 이끄는 선택을 전보다 많이 하고 지내면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았지만, 또 가끔은 선명하고 구체적인 목적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 무의미감에 휩싸이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성취,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 두 가지가 다 중요하고 각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어디에 좀 더 무게 추를 두느냐가 다를 것이다. 나에게 좀 더 와 닿는 건, 어쨌든 현재를 희생시키면서 이루는 성취는 진짜 행복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이번 한라산 등반을 기점으로, 목적지에 닿기 위한 등산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등산한 그 날은, 전날과 다르게 바로 곯아떨어져 아침까지 꿀잠을 자긴 했다.
이 글을 쓰던 중 문득 생각난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가사 일부를 옮겨보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초원에 풀이 없어 소들이 비쩍 마를 때쯤
선지자가 나타나서 지팡이를 들어 (저 쪽으로 석 달을 가라)
풀이 가득 덮인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
죽을 동 살 동 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 밖에는 없잖어
풀은 한 포기도 없잖어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되돌아 갈 수도 없잖어
(중략)
거친 가시밭길을 지나
꼬박 석 달을 왔지만
아무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 밖에는 없잖어
풀은 한 포기도 없잖어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소들은 굶어 죽게 생겼잖어
딱딱한 자갈 밖에는 없잖어
먹을 거는 한 개도 없잖어
이건 뭐 뭐가 없잖어
되돌아 갈 수도 없잖어
- 장기하와 얼굴들 <아무것도 없잖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