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고 볶고 수시로 충돌하는 24시간 밀착 여행
<더 랍스터>라는 영화가 있다. 오직 커플만이 허용되는 세상에서 싱글인 사람들은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여 숲 속에 버려지고 사냥을 당하게 된다. 그 두려움으로 인해 싱글들은 어떻게 해서든 커플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이를테면 코피가 잘 나는 상대와 비슷해지기 위해 주먹으로 자신의 코를 세게 쳐 일부러 피를 내고, 무자비한 파트너에게 맞추고자 자신도 냉혈한인 것처럼 연기를 하기도 한다. 억지스럽게 공통점을 찾아내야만 커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커플 천국 솔로 지옥’의 영화 버전인 이 독한 코미디 영화를 나는 아주 재미있게 봤다. 강력한 사회적 규범으로서의 ‘커플’을 보여주고,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인 두 사람이 커플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떤 부자연스러움과 거짓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이 꽤나 흥미로웠다.
제주도에서 여기저기를 다니며 보게 되는 여행객들의 주요 단위는 남녀 커플이었다. 나도 남편과 함께였지만 가끔은 그 많은 쌍쌍들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들 어디서 어떻게 만나 저렇게들 쌍을 이루어 함께 하고 있는 걸까.
서귀포의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달리기로 한 날이었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한 후 트렁크에서 자전거를 꺼내고 있는데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한 호텔 앞에 출동한 경찰. 큰소리로 변명을 하는 남자와 혼자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 내용을 대충 듣자 하니 남자의 폭력 문제로 여자가 경찰을 부른 모양이었다. 여자를 때리는 놈들은 어쩜 그리 많은지! 것도 제주도까지 와서! 어휴.
방음이 잘 되지 않던 저렴한 숙소에서 묵던 어느 날 밤에는, 술이 취한 상태로 생각되는 여성이 질러대는 비명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계속 귀를 기울여야 했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위험한 상황-물리적 혹은 성적 폭력 등-이 있는 건지, 그냥 주사나 연인 간의 장난 같은 것인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어 답답하고 걱정이 되었다.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나도 그제야 신경을 끄고 잠을 청했다.
남편의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던 가까운 친구와의 연락 이후 여행 기간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대체 커플이란 무엇인가.
과도하고 급작스러운 친밀함과 폐쇄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되는 그 관계가, 나는 가끔은 위험하고 무섭게 여겨지곤 했다.
결혼 5년 차인 우리 부부.
이번 여행에서 거의 24시간 밀착해서 지내면서 우리도 커플이라는 것, 결혼생활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부부가 함께 세계 일주나 장기 여행을 했다는 내용의 책들을 보면 서로 거의 다투지도 않고 역할이 잘 분담되어 있다고들 하던데, 그들이 덜 솔직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훨씬 미성숙한 인간들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종종 사소하게, 또 가끔은 심각하게 싸우곤 했다.
전에도 모르지 않았지만 더 확실해진 사실이 있다. 그대와 나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속도감을 즐기고 땀을 흘리는 신체활동을 좋아한다.(커플이 함께 같은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 결혼생활에 대한 자신의 로망 중 하나였다고 한다.) 매사에 효율을 추구한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고, 하루의 일정 중간에 숙소에 들어와 낮잠을 자거나 쉬는 걸 선호한다. 미리 짜둔 계획을 변경하는 걸 싫어한다.
다른 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체육 열등생이었고 기본적으로 겁이 많다. 천천히 걷고 걷는 중간에 자주 쉬면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 여행 방식을 선호한다. 매사에 느리고 비효율적인 편이다. 여행만 왔다 하면 평소와는 달리 의욕이 넘쳐 아침 일찍 눈이 뜨이고 좋은 곳을 한 곳이라도 더 가고 싶어 욕심을 낸다. 즉흥적인 데가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일의 일정에서 우리가 서로 부딪히지 않기는 어려웠다. 각자가 재미를 느끼고 즐거워하는 지점이 꽤나 달랐던 것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나의 즐거움이 너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땡볕에 올레 길을 한참 걷는 일은 나만 의미 있어하는 일이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빠르게 달리는 건 나에게 있어 재밌기보다는 약간 겁이 나는, 부담스러운 활동이었다. 남편이 늦잠을 자고 있거나 아까운 좋은 날씨에 몇 시간씩 낮잠을 자면 나는 상대가 일어나길 기다리면서 속이 부글거렸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조금씩 양보·타협·조율한다’는 대원칙은 사실 말이 쉽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당사자여서 잘 되지는 않지만 이 ‘부부’라는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연구해보고 싶단 생각이 다 들었다.
‘세상에 오직 우리뿐’인 상태에서 ‘나와 달라서 못 견디겠는 타인’, 그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관계랄까. 혹은 이기심이 기본적인 본능인 두 사람이 함께 묶여 있으면서 비슷한 문제로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또 싸우는 일들이 반복되는 관계라고나 할까. 게다가 다른 관계에서처럼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도록 물리적 혹은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이라는 것의 특성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남의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하는 것... 이것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이 아니겠는가. 둘이 계속 같이 있는 여행은 내 맘대로만 할 수 있는 방식의 여행이 아니었지만, 그러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았다.(내가 더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서로 상대의 방식에 맞추어주면서도 마음 한 편에 불만이 쌓이다가 그게 다른 식으로 표출이 되기도 했다. 싸우고 나면 전혀 아름답지 않은 나와 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고 속상해지고, 상대에게 실망하거나 스스로에 대해 자책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눌러온 불편한 감정이 확 해소가 되어버려 시원해지는 면도 있었다.
원하는 게 많이 다르면 서로 계속 함께 다니기보다 ‘따로 또 같이’ 다녀봤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막상 그렇게는 잘 되지 않았다. 정말 독립적으로 지내고 싶다기보다는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몇 번 따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너무 근사한 카페에 오자 상대 생각이 나고, 또 맛있는 해물 짬뽕을 혼자 먹자니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 싶어 아쉬워지는 그런 식이었다.
그래도 다음번에 또 긴 여행을 함께 한다면 그때는 각자의 자유와 욕구를 더 반영하는, 말하자면 보다 독립성을 추구하는 여행을 한번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다. 과연 그렇게 잘 되려나?
결혼이란 것의 장점은, 영원히 환상 속에 머물 수 없고 그 당사자들을 어떤 ‘진실’에 맞닥뜨리게끔 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든 게 다 잘 맞아.’
‘그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줘.’
이런 착각은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결혼은 동화 속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다.
계속해서 너와 나의 이기심, 기대, 오해, 불만 등이 부딪치고 얽히는 현실이다, 결혼은.
타인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 아니며, 나와 너는 사소한 일들에서도 매번 부딪히거나 대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이기심과 부족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아닌 척 숨기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며(때로는 덜 우아한 방식으로), 나 자신의 고질적인 문제와 마주하고(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피할 수가 없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상대의 마음에 대해 늦게라도 생각해 보면서 조금씩 개선이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닐는지.
너와 나의 진실에 맞닥뜨린다는 것.
내 생각에는 이것이 부부로 맺어져 너무나 가까이에서 모든 생활을 함께 하게 되는 두 사람에게 제공되는, 결혼의 이점인 것 같다. 이후에 이 진실을 어떻게 다룰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적나라하게 확인했던 여행지에서의 그 잦은 다툼에서 다행히 살아남아 평화로운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서두에서 인용한 영화 <더 랍스터>의 마지막은 이렇다.
‘커플 천국 솔로 지옥’ 세상의 규범을 견디지 못하고 싱글들이 모여 있는 숲으로 도망친 남자 주인공. 커플이 금지되어 있는 그곳에서 역설적이게도 그는 진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이것이 발각되어 그 벌로 결국 그녀는 눈이 멀게 된다. 잔혹한 숲으로부터의 도피에 어렵게 성공한 후 두 사람이 들어간 도시의 어느 식당. 그녀와의 일치를 위해 화장실에서 자신의 눈을 찌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 그리고 (아직)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눈먼 여자의 얼굴을 길게 보여주며 이 영화는 끝난다. 이 커플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남자는 눈을 스스로 찌른 채 돌아왔을까, 아니면 눈먼 여자를 버려두고 도망갔을까? 꼭 두 사람 모두 눈이 먼 상태로만 이들은 함께 할 수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곱씹을수록 섬뜩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