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운동 젬병에 저질 체력인 내가 몸으로 하는 활동 중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아니 꽤 좋아하는 편인 일이다. 늘 여행을 제일 좋아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구체적인 의미는 ‘여행지에서 낯선 곳들을 마구 걸어 다니는 순간들을 사랑한다’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2014년 가을에는 스페인의 유명한 순례길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를 한 달간 걸었다. 부르고스(Burgos)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약 500km 정도가 되는 길이었다. 나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듣고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제주에는 올레길이 있다. 제주도 출신의 여성 언론인 서명숙 님이 은퇴 후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다녀와서 왜 우리나라엔 이런 길이 없는지 통탄하던 중 제주에 직접 길을 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완주를 한 건 아니지만 틈나는 대로 숙소 주변의 해안이나 가까운 올레 코스를 찾아서 열심히 걸었다.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
일단은 걷기의 속도에 대한 것이다. 천천히 나의 속도로 걷는 것만큼 풍경을 온전히 즐기기에 좋은 방법은 없다. 아름다운 바다나 근사한 섬을 차로 휙 지나치며 잠깐 보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점점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간, 여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 가령 돌 사이에 피어난 작은 꽃이나 윤기가 나는 이파리들, 열심히 날갯짓을 하는 나비들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건 오직 느리게 걷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나의 속도로 걷는 것은 사실 혼자 걸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땐 서로 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속도는 남편에게는 너무 느렸고, 남편의 속도는 내게 너무 급했다. 함께 걷기 시작했어도 남편이 먼저 앞장을 서고 한참 뒤에 따라오는 나를 기다리는 때가 많았다. 기다리는 사람은 살짝 짜증이 나고, 뒤에 처진 사람은 왠지 재촉을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신체적 조건이나 여행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이 같은 페이스로 걷는다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에 비해 혼자 걷는 일은 일단 자유롭다. 자신의 욕구와 상태만이 유일한 변수가 된다. 그러다 보니 걷는 행위와 풍경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혼자 걷기’인 게 맞다. 그렇다면 '함께 걷기'보다는 '혼자 걷기'가 더 나은 여행의 방식일까?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큰 맘먹고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는 일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어느 여름, 나는 뉴질랜드를 여행지로 선택했다. 조금 긴장된 상태로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하자마자 자유의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고, 용기를 내서 오길 잘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우연히 들른 푸카키 호수(Lake Pukaki)에서 나는 눈물을 쏟았는데 그건 그야말로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흘리는 눈물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했다면 그렇게 눈물이 났을 것 같지는 않다. 돌아온 후 이 신기한 경험에 대해 주위 동료들에게 이야기하자, 외로움에 사무쳐서 흘린 눈물은 아니었냐는 농담 섞인 핀잔이 돌아왔다.
또 기억나는 건 뉴욕에 가서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걸었던 경험이다. 그땐 함께 갔던 친구가 있었지만 일정을 부분적으로만 함께 했었고 그곳은 나 혼자 걸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다리를 성큼성큼 걷던 그 순간에 나는 일종의 완벽한 행복감을 느꼈다. 어떤 간섭도 없이 자유로웠고, 걸음걸이는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으며, 5월의 공기는 정말로 상쾌했다. 이 이상 더 바랄 게 없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혼자 걸었던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서로 다퉈서 따로 다녔을 때나, 남편이 늦잠을 자는 동안 숙소 주변을 걷는 정도였고, 딱 하루 각자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던 날 남편은 서핑 강습을, 나는 걷기를 선택했었다. 풍경을 오랫동안 눈과 마음에 새기며 걷는 일은 늘 그렇듯 즐거웠지만, 올레 6코스의 제지기 오름, 7코스의 강정천 주변을 혼자 걸었을 때의 느낌은 잘 잊히지 않는다. 그건 바로 두려움이었다.
사실 나는 제주 올레를 떠올리면 2012년경 여기에서 살해당한 여성에 대한 생각이 늘 함께 들곤 했다. 그 사건은 너무 끔찍하고 처참한 느낌을 주어서 잘 잊히지 않는 종류의 일이었다. 용감하게, 두려움을 떨치고, 친구나 가족에게 둘러싸이지 않은 채 홀로 걷기를 감행한 여성에게 일어난 비극... 여성, 독립적인 여성, 혼자 여행하는 여성에 대한 그 모든 편견과 선입관을 마치 재확인시켜주는 것만 같은, '그것 봐라'하고 조롱하며 겁을 주는 것만 같은 사건으로 내게는 여겨졌다. 피해를 입은 여성이 그저 나와 관계없는 타인으로 생각되지가 않았다.
남편과 함께 걸을 땐 그 생각들이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다가 혼자 걷게 되었을 때에 확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제지기 오름을 걸을 땐 낮인데도 인적이 없었고, 입마개를 한 개를 데리고 온 중년 남성 한 명만을 지나쳤을 뿐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떨치려 애쓰면서 계속 걸었다. 다 올라가서도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그 정취를 충분히 즐기기는 어려웠다.
흐리고 습하던 어느 날 오전에는 강정천 주위의 후미진 숲길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그냥 차도로 걷기를 선택했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겁이 난다는 사실이, 이게 실제적인 위험에서 기인한 것이든 학습이 된 것이든 간에 찝찝하고 성가시게, 한편으로는 슬프게 느껴졌다. 결혼을 한 후 너무 의존적인 인간이 된 것인가, 분리불안이라도 생긴 것일까, 독립성의 감각을 많이 잃은 것인가 자문해보기도 했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의 홀로 걷기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더 선명하게 남겼던 것 같다.
하루는 동쪽 해안 근처를 걷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러 정자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멀리 세워둔 차를 가지러 간 상태였다. 홀로 또는 파트너와 함께 걷는 이들이 가끔씩 지나갔는데 우비를 입고 있던, 키가 자그마한 편이고 안경을 쓴 한 중년 여성이 정자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것이 혼잣말인지, 나에게 건네는 말인지가 분명치 않았다. “네.”라고 간단히 응수하자 그녀는 또 “커피를 마셔야겠다.”라고 중얼거리듯 이야기하고는, 정자 건너편에 있는 카페로 가버렸다. 나는 그녀의 혼잣말이 습관인 것인지, 아니면 나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일종의 표현이었던 것인지를 얼마간 생각했다.
다음에는 혼자 여행 중인 듯 보이는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에코백을 들고 있었다. 정자 한쪽에 자리를 잡고는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읽다가 바다 쪽을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열심히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지금 제주에서 어디를 다니면서,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말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왠지 쑥스러워 그만두었다. 정자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유유히 다시 걸어 나갔다.
혼자 걷는 두 여성을 보면서, 그들이 조금은 외로워 보인다고 느끼면서, 누군가와 함께 걷는 일과 홀로 걷는 것에 대해 또 생각했다. 혼자 자주 여행하고 걸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내 맘대로, 원하는 속도와 일정으로 열심히 걸어 다니고 때로 길을 잃기도 하면서 온전한 자유를 누렸지만, 때때로 허전하거나 심심했고 여행의 즐거움을 나눌 그 누군가가 필요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빠릿빠릿하고 내 짐도 가끔 들어주고 목적지로 가는 최선의 경로도 잘 찾는 짝꿍이 옆에 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걷고 같이 떠들고 웃는다. 맛있는 걸 먹고 마시고, 걷다가 쉬고, 좋은 곳에서 사진을 함께 찍으며 여행의 기쁨을 나눈다. 확실히 덜 외롭다.(사실 외로울 틈이 거의 없다.) 익숙하고 편안하다. 안심이 된다. 자주 든든하다. 그렇지만 여행의 최대 매력인 ‘낯섦과 자유로움‘을 최대치로 즐긴다는 면에서는 아무래도 제한이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장단점이 확연히 구분되는 ‘혼자 걷기’와 ‘함께 걷기’ 중에서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결론을 내리긴 어려웠다. 혼자 걸을 땐 외롭거나 때로 두려워 옆에 누군가가 함께 걸어주었으면 싶고, 같이 걸을 땐 홀로 있을 때 누리는 온전한 자유가 그리워지는 짝이라니... 아무래도 인간은 현상태에 만족을 느끼기 어려운 어리석은 존재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