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라는 우연에 관하여
이번 여행에서는 비가 자주 내렸다. 우리가 묵었던 한 펜션의 주인아저씨는 제주도에 5년간 살면서 이렇게 긴 장마는 처음이라고 했다. 1-2주 내내 비 예보 표시가 되어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다행히 예보는 자주 빗나가곤 했지만) 기본값이 ‘흐림 또는 비’인 상태에서 가끔씩 운 좋게 맑은 일기가 찾아오는 느낌이었다.
초기의 현실 부정(‘이럴 리가 없지. 곧 날씨가 좋아질 거야.’)과 분노(‘어떻게 온 여행인데 날씨가 이렇게 안 도와주는 거야!’)의 단계를 지나 체념(‘그래, 이런 게 여행이지. 날씨를 뭐 어쩔 수 있겠어.’)과 합리화 및 정신승리(‘날이 너무 쨍했으면 다니기에도 덥고 힘들었을 거야. 지금이 나아. 얼굴도 덜 타잖아?’)의 단계로 어쩔 수 없이 넘어가긴 했지만, 날씨에 대해 연연하지 않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힘들게 오름 정상에 오르거나 축축한 숲길을 걸을 때면 “여기 날씨 좋을 때 왔으면 정말 장난 아니게 좋았겠다.”하는 미련과 아쉬움 가득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무래도 환한 태양빛과 맑고 쾌적한 기후는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 축복처럼 느껴진다. ‘날씨’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첫 번째는, 2016년 나의 결혼식 날. 남편과 나는 겁도 없이 야외에서 예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웨딩업체 대표는 본인이 찾아봤더니 어린이날에 비가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조금 황당한 확률의 논리로 우리를 안심시켰다. 날짜가 다가오는 동안 엄마는 걱정으로 거의 병이 날 정도였다. 결과는? 예식일 전날과 예식 당일 오후에 장마와도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식이 진행되던 몇 시간 동안만 날이 더할 나위 없이 쾌청했던 것이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폭우를 맞으며 호텔로 가던 길에서 우리는, 앞으로 날씨에 대해서는 평생 불평을 하지 말자고 깔깔대면서 다짐했었다. 물론 그 다짐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2015년과 2018년 여름에는 스위스에 다녀왔는데, 두 번 다 그린덴발트(Grindenwald)의 피르스트(First) 트레킹을 했다. 2015년에는 안개가 자욱한,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의 가사('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갯속에 싸인 길...'로 시작한다.)가 절로 생각나는 그런 길을 주로 걸었다. 동행했던 동생은 오히려 운치 있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알프스 풍광을 보러 온 스위스 여행 내내 비가 오는 것에 대한 실망감에 계속 불평을 쏟아냈다.
2018년에 부모님과 함께 다시 간 피르스트는 3년 전에 왔던 곳과 같은 장소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아이거(Eiger)라는 거대한 설산을 보면서 걷는 트레킹 코스인 줄을 아예 몰랐던 것이다.(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니까.) 직접 내 눈으로 보면서도 비현실적이던, 너무나 근사한 풍경 속을 걸으며 나는 감동하고 또 감동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작년 추석 명절에 갔던 사이판 여행이다. 휴양지 여행은 가본 적이 거의 없었던 우리가 어느 tv 예능을 보고 완전히 사로잡혀서 충동적으로 결정했던 곳이었다.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군청색의 바다와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의 영상에 반해버렸다.(한마디로 낚인 거다.) 결혼 후 명절에 우리끼리만 여행을 가는 건 왠지 눈치가 보이고 가족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를 감수하고, tv 화면에서 보이던 그 멋진 풍경을 기대하면서, 사이판으로 떠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도착하자마자 비가, 그것도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이 비는 우리가 머문 3박 4일간 그칠 줄 몰랐다. 알고 보니 9월은 사이판의 우기였다. 동생이 보내준 한국의 추석 사진엔 맑은 밤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었다. 비 오는 바다에 스노클링을 하러 들어가기도 하고 비싸게 예약한 리조트에서 기분을 내보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렇듯 여행에서 날씨는, 태양은 그야말로 전부인 것이다!
아무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주에서도 그날그날의 날씨 상황에 따라 일정을 정하고 움직이기 일쑤였다. 비가 쏟아지는 날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두드리는 날이 많았다. 그간 모아둔 빨랫감을 가지고 셀프 빨래방에 가는 것도 비 올 때 주로 하게 되는 일이었다. 건조기까지 싹 돌려서 뽀송뽀송해진 옷들은 이상한 만족감을 주곤 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가 아침에 파란 하늘이 보이기라도 하면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는 것이다. 이런 좋은 날, 어디로 가서 뭘 하는 게 제일 좋을까를 궁리하면서, 햇볕이 아까워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며칠 만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맑은 날은 어찌나 감사한지, 황송한 마음마저 든다. 함덕 서우봉 해변에 앉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하루를 끝마치게 되었을 때, 바람마저 살랑살랑 부는 황우치 해변 근처의 카페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빛깔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되던 순간, 일기예보는 분명 흐림이었는데 갑자기 믿기지 않게 반짝이며 빛나는 바다를 보여주어 날 멍하게 만들던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에서는 절로 산다는 것에 대해, 나를 둘러싼 이 세상에 대해 감사하고 찬탄하는 마음이 흘러나왔다.
문제는 이 날씨라는 것이 순전히 우연에 가까운 것이며 예측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다. 이렇게나 결정적인 요소가 그저 운 같은 것이라니, 그 운에 따라 나의 행복과 불행이 이다지도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니. 그런데 실은 우리의 존재방식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닐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우연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은 나를 아찔하게 만든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4)
뜬금없이 떠오른 성경 구절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을까.
햇살이 쏟아져 온 세상이 아름다운 날에는 기뻐하며 네가 살아있음을 맘껏 즐기고, 흐리고 꿉꿉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해야 할 일을 하며 불평을 일삼지 말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러고 보니 가끔씩 찾아오는 흐리고 비 오는 날들은 여행을 정리하고 몸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휴식기를 제공해줬던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찾아갔던 그 많던 카페들은 또 얼마나 좋았는지. 좋은 날씨는 당연한 나의 권리가 아니라 고마운 선물이라는 걸, 이번 제주의 긴 장마로 또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