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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Oct 17. 2020

지각하는 아이들에게

안녕 애들아!     


오늘은 여러분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제인 ‘지각’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여러분도 담임샘으로부터 지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또 매일 신경 써서 학교에 정시까지 와야 하니 많이 힘들 것 같아요. 사실 대부분의 샘들에게 ‘지각’ 문제는 생활 지도에서 제일 먼저 신경 쓰는 부분인 것 같아요. 왜냐면 여러분이 일단 학교 수업에 참여를 해야 생활 지도가 가능해지고, 지각 지도가 가장 기본적인 생활 습관 형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많은 부모님들도 공부는 못해도 학교에는 절대 늦게 가면 안 된다고 강조하시는 것을 보니 역시 중요한 생활 태도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의 시작이 전원 출석이면 매끄럽게 느껴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몇몇 학생을 중심으로 지각 횟수가 늘어나고 있네요.      


샘도 사람인지라 자주 지각하는 학생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생기곤 해요. 물론 그러면 안 되겠지만 대부분의 샘들도 솔직히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일단 샘에게 결석계 작성이라는 업무 부담을 안겨주죠.(ㅎㅎ) 사실 이 말은 반농담이고, 이것보다도 샘과의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 같아요. 샘과 학생과의 약속과 신뢰 문제로 가끔 착각하죠. 지각 안 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도 그때 뿐이고, 점점 샘을 무시하나 하는 생각도  들곤 하죠. 하지만 교사 생활을 하면서 지각은 샘과의 관계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너희들의 문제라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어요. 사실 샘 학창 시절에도 그러했죠. 지각 문제에 대해 마음이 상할 때마다 샘 고3 때를 다시금 떠올려봐요.      


사진 - Young샘


샘 고3 때 지각을 참 많이 했어요. 고2 때까지는 모두 개근이었죠.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출석은 매우 엄격하셔서 개근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2까지는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고2 말부터 친한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교우 관계로 힘들어하기 시작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능 공부에 지쳐 고3 들어가기 전에 벌써 번아웃을 느꼈어요. 학교 가는 게 저절로 싫어지더라고요. 아침에 눈 뜨는 게 점점 힘들어졌죠. 그래도 지각은 하면 안 된다는 깊은 마음이 있었지만, 샘도 모르게 지각하는 횟수가 늘어가기 시작했어요. 샘도 당시 자꾸 지각하는 나를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각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아요. 학교 가는 게 싫었고,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했죠. 당시 담임 샘께서 많이 걱정해주셨는데, 그나마 그 정도 지각한 것도 당시로는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각은 분명 학교 규칙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아이의 아픈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작은 징후로 바라볼 때 깊이 있는 접근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 혼을 내더라도 천천히 아이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결국 학교 오기 싫은 이유가 드러나게 되죠. 가장 대표적인 게 친구 관계 고민과 성적 문제이고, 가정 내 불화 등 가족 문제도 심심치 않게 토로하죠. 또한 학교에서 심한 무기력을 느낄 때도 지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존재감을 못 느끼고, 재미를 못 찾는 학생들도 지각을 많이 하죠. 분명 과거 샘과 같이 자신만의 이유가 얕든 깊든 간에 존재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충분히 공유한 후 지각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면 소위 약빨(?)이 좀 더 오래 가요. 비록 나쁜 습관이 다시 이겨 지각한다고 해도, 대화를 통해 심리적 공감을 병행하면 다시 마음을 바로 잡을 힘을 찾는 것 같아요.      


사진 - Young샘


사실 샘도 가끔 ‘내가 왜 이렇게 지각 문제에 큰 의미를 두지’하고 생각하기도 해요. 학교에서 지각하지 않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절대시하고 있는데 생각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아이들이 등교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선택으로 인해 내적 동기와 자기 통제감이 높아져 지각이 좀 더 줄어들지 않을까 상상해봐요. 사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유연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죠. 출근 시간을 8-10시 사이로 정하고 하루 8시간 근무하면 퇴근하는 방식으로, 출퇴근 시간을 개인이 정할 수 있죠. 이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9시 혹은 10시, 이렇게 2가지 선택권만 주어져도 자기 결정이라는 생각에 자발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고교학점제가 도입돼 1교시 공강이 허용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지 않나요? 물론 총 수업 시수는 채워야겠죠. 아무리 적은 선택지여도 의무와 선택은 동기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모든 학생이 정시에 등교해 7교시까지 획일적인 일정으로 움직이는 건 산업사회의 잔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모두가 컨베이어 벨트에 제 시간, 제 위치에 있어야 공장 전체가 돌아갈 수 있듯이, 학교 시스템도 그 원형을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회사도 점점 유연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왜 학교는 변하지 않을까요? 고교학점제 도입 등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 때 이런 점도 충분히 고려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각 문제도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간단한 현상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키워드 안에 아이의 심리, 가정 문제, 입시 문제, 학교 제도 등이 겹겹이 쌓여 있죠.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샘이 가지고 있던 출석 백프로에 대한 강박과 지각하는 학생에 대한 원망도 조금씩 가벼워져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엄연히 주어진 현실이 있고, 시간 준수는 여전히 인간관계에 있어 기본 덕목에 해당되기 때문에,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아무리 그 출발이 심리적인 원인이라고 해도, 지각하는 게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 타성에 젖고, 심지어 악용하는 사례까지 접하게 된 후 적극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어요. 지각이 습관화돼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심지어 거짓말로 꾀병을 쉽게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겠지요. 매우 아픈 척을 하고 병원까지 다녀온 학생이, 몰래 쉬는 시간에 보니 친구들과 장난치고 심지어 거짓말로 병원 간 걸 친구한테 자랑하고 있는데, 샘이 속을 많이 삭혔답니다.      


사진 - Young샘


지각은 여러분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어요. 계속 부정적 상태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좋은 습관을 형성할 수 없죠. 새로운 의지와 마음도 같이 가꿔야 해요. 예전 옆자리 샘이 아이들에게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해주신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아무리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람이어도, 자신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다가, 다 마무리가 된 후에야 조용히 눈을 감는다는 마음의 신기한 힘에 관한 이야기 하셨어요. 마음이 생사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힘들겠지만 과거는 훌훌 털고 노력과 의지의 마음을 조금씩 키워갔으면 해요. 혼자가 힘들면 친구, 그리고 샘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으면 해요.      


인상 깊게 본 단편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할까 해요. ‘매일 지각하는 아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초등학교 3학년 담임샘과 8명의 아이들이 직접 만든 영화예요. 세진이는 매일 학교에 지각을 하는데, 결국 학급회의를 열어 세진이가 어떻게 하면 지각을 안 하게 될지를 논의하게 돼요. 반 아이들이 모두 같이 세진이 집에 들러 등교하기로 결정해요. 하지만 다음 날 모든 학생이 다 지각하게 되죠. 이상하게 느낀 담임샘은 자신도 함께 세진이 집에 들러 등교하기로 마음먹어요. 세진이는 늦지 않게 집 앞으로 나왔고 담임샘과 등굣길을 걷기 시작해요. 그런데 시골 등굣길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담임샘도 처음 알았던 거예요. 세진이는 자연에 관심이 많은 아이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무, 꽃 등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벌레도 잡아 샘께 건네주었어요. 샘도 아름다운 길에 반해 아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결국 샘도 지각을 했답니다. 그 후 샘은 학교 밖 자연 속에서의 체험학습을 늘려 아이들과 자연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10분짜리 짧은 영화였는데 아이들 연기와 내용 자체가 귀여워 흐뭇하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이 아이에게는 학교 밖이 더 학교같이 느껴졌던 것 아닐까요? 지각이 결국 학생이 아니라 학교 안도 바라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 전하는 것 같아요. 결국 담임샘은 자연을 학교의 공간으로 끌어안게 되죠. 지각 문제는 결국 여러분과 학교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봐 바로 세울 때 의미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학교에 너무 수동적으로만 끌려간 것은 아닌 건지, 혹은 작은 노력이라도 해본 적은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해요. 물론 학교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여러분의 노력도 꼭 돌아봤으면 합니다. 장애인 친구 학습 도우미 지원하기, 마음 맞는 친구끼리 자율동아리 만들기, 좋아하는 과목 샘과 친하게 지내기 등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학교 안에서 나의 공간을 만드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갔으면 합니다.       


출처 - 영화 <매일 지각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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