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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Mar 22. 2021

날개 단 사나이

단편 세 번째

이무영 씨는 작은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의 나이 39. 젊은 나이에 한 회사의 사장이 된 그에 대한 찬사가 여기저기에서 끊이지 않았다.


무영 씨는 비록 크진 않지만 자신이 이루어낸 건실한 회사를 한 번씩 돌아보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사업을 시작하던 시기의 힘들던 때를 떠올려 보며 지금의 회사에서 오는 뿌듯함을 한껏 만끽하는 그였다. 그렇게 사색에 잠길 때면 떠오르는 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이무영 씨가 만난 사람 중 독특함만으로 손에 꼽을만한 사람이었다. 그 독특함으로 인해 누군가가 그의 소식을 전하며 그는 지금쯤 날개를 달고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을 거라 해도 믿어질 정도였다.


이무영 씨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5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때 그의 나이 30살이었는데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다른 일을 해보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할 게 없었다. 이것저것 사정을 따져보고 형편을 생각해보면 할만한 일이 별로 없았던 것이다. 그렇게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시기에 만났던 이라서 그런지 그에 관한 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뇌리에 깊게 박혀있었다.     


이무영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을 당시 과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또 어딘가에 취직을 해야 하나 아니면 모아둔 돈으로 사업을 일으켜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에 하루도 맘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영 씨에게 사업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였기에 사업의 대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직접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가 사업 관련 서적을 탐독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곤 했던 것이었는데 도서관은 평소 자주 찾던 곳이 아닌지라 아직은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랬기에 자연스레 또래가 있는지부터 살피곤 했다.


도서관에 가게 된 지 이틀째 되는 날부터 눈에 띄는 사내가 있었다. 그냥 한눈에 봐도 도서관과 자연스레 매칭이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머리는 붉은빛이 은은히 도는 것이 마치 염색을 한 듯했고 이무영 씨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기는 했지만 외모만으로는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가 도서관에 오는 시간대가 이무영 씨와 얼추 비슷했는지 둘은 항상 마주쳤다. 이무영 씨는 그의 나이가 몇 살일지 궁금했다. 어느 날은 무영 씨가 도서관에 가니 그는 이미 와 있었는데 어떤 한 권의 책을 보고 있었다.


무영 씨는 무영 씨대로 사업 관련 서적들을 모아놓고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1시간이나 흘렀을까 무영 씨는 잠시 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흘끗 그를 보았다. 그는 책이 뚫어져라 눈 가까이에 대고 보고 있었는데 잠시 뒤 진짜로 뚫어졌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책을 뒤집어 표지 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렇게 도서관에 나간 지 며칠째 되던 날부터 그와 마주치면 무영 씨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그도 자연스레 인사를 받는 것이 오다가다 무영 씨를 본 듯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시작한 지 며칠 뒤엔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마침내 길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졌었다. 그의 나이는 당시에 33살이었다. 그런 그가 무영 씨를 부를 때는 늘 선생이라는 호칭을 썼었다. 무영 씨는 도서관에서 그와 마주칠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도 무영 씨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 현재는 변변한 직업이 없었고 회사를 다니다가 무언가 깨달은 게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만 했다. 그럼 뭘 해서 먹고 사냐고 물으니 벌어 놓은 돈이 조금은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서니 먹고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앞으로 직장은 다니지 않을 거라 했다. 얘기를 쭉 들어보니 계속해서 돈이 들어올 데도 없는 것 같은데 얼마를 벌어놓았는지는 몰라도 하루하루가 앞으로 먹고살 걱정만으로 가득한 무영 씨와는 달리 단 한 치의 경각심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영 씨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렇고 그런 사람이려니 생각했는데 차츰 그와의 대화 수가 늘어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할 정도로 신기했고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그와의 대화는 늘 무영 씨에게 신선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선사했지만 그날의 대화는 정말 손꼽을 정도로 특별했다.      


그는 자신은 시골에서 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학교 얘기가 나왔기에 무영 씨는 자연스레 공부 얘기를 꺼내 보았다.


그는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말했다.     


“아, 난 학교 다닐 때 공부는 하지 않았어요.”  

   

그는 공부를 못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하지 않았다는 표현을 썼다. 무영 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눠 볼수록 그 말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저도 공부는 못했어요. 그런 건 뭐 상관없지 않아요?”   

  

“선생도 공부를 하지 않았나 본데. 내 말 한번 들어봐요. 공부를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달라요. 그걸 구별하지 못하는 게 멍청한 거지요. 공부를 잘하는 것과 머리가 좋은 것은 결국 별개라는 말입니다. 공부를 안 하더라도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있고 공부를 잘해도 머리가 좋지 않은 아이들이 있게 마련인 거지요.”  

   

맞는 말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 겉보기에는 뺀질뺀질 보여도 분명 영리한 친구가 있었다. 무영 씨는 그럼 그 친구들이 공부를 안 하는 이유를 그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면 머리가 좋은 친구가 공부를 안 하는 건 왜 그런 건가요?

머리가 좋다면 학교 공부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요. 막상 해보려고 하면 또 하겠지요. 그렇지만 금방 실증을 느낄 걸요. 머리가 좋은데 공부를 안 하는 친구들은 어릴 적에 학교와 교육제도에 대해 배신감이나 환멸을 느낀 경우도 있을 것이고, 선생도 학교를 다녀봤으니까 잘 알겠지만 학교란 곳은 창의성이나 자신의 재능을 키워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무영 씨는 그럼 누구나 공부를 안 했다고 우기지 누가 공부를 못한 거라고 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공부를 스스로의 의지로 안 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나요? 남들이 볼 땐 그냥 공부를 못한 건지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안 한 건지 알 수 없지 않나요? 공부 못한 사람이 자기는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다들 우기면 장땡 아닌가요?”     


“역시 좋은 질문입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요. 그 사람의 머릿속은 그 사람 본인만이 아는 거니까 말이에요. 정말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안 한 거라면 언젠간 그 자신이 택한 어떤 분야에서든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내지 않겠어요? 설령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만족스럽게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그가 당황스러워할까 우려되어 이제 그만 물어볼까도 했지만 무영 씨는 학업에 관한 그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었다.     


“말씀을 들어보면 공교육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으신 것 같아요. 맞나요? 맞다면 이유를 물어도 되나요?”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난 공교육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아요. 누군가에겐 공교육이라는 제도가 ‘득’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한데 내가 볼 땐 스스로 고유한 빛을 낼 수 있는 아이들마저도 가르침이라는 이유로 그 빛을 가려버리고 교육자라는 자들이 부여하는 빛을 내도록 강제하는 것이더란 말이지요. 강요되는 그 빛이 그 아이에게 맞지도 않고 그 아이는 원치도 않는데 말이야. 아이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지요.”     


무영 씨는 그의 말에 공감했음은 물론 날카로운 그의 통찰과 비유에 적잖이 감탄했다.     


그가 말을 덧붙였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학교라는 공교육 제도가 왜 생겨난 것 같아요? 순기능도 있지만 솔직히 배움 외에도 성인이 되면 회사나 어디 집단에서 써먹기 편하게 ‘어떤 이’들의 입맛에 맞게끔 애들 다듬으려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는 와중에 그 아이만이 낼 수 있는 빛 까지도 다듬겨 나가기도 하고 말이야. 안타까운 일 아니에요? 자신의 빛의 존재를 알아채고서는 자신의 빛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도 있을 거고 그리고 그 모습이 마치 학교의 규율에 적극 따르지 않고 반항적이며 공부도 하지 않는 걸로 보이기도 하고 그런 것 같지 않아요?”     


그는 말을 마치고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있었다.  

   

무영 씨는 어디에서도 쉽게 들어볼 수 없는 그런 견해를 듣고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묻고 싶었지만 마땅한 질문이 떠오르지 않아 창밖 멀찍이 창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멋진 새 한 마리가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고 있었다.     


무영 씨와 그는 말없이 그 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무영 씨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그에게 얘기했다.     


“저도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회사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데 솔직히 가끔 생각해보면 그냥 직장에 더 다닐 걸 괜히 그만둔 것 같기도 해요. 회사만 그만두면 다 잘 될 것 같았는데 막상 그만두고 나니 뭐 딱히 잘되는 것도 없고 수입도 끊기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요. 취직을 다시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사업을 할까 싶기도 하고.. 사업은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막 해보기도 그렇고. 역시 취직하는 수밖에 없나 봐요.”     


그는 무영 씨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는 새가 날아간 곳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말했다.   

   

“회사 다니는 게 좋아서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면 굳이 회사에 목맬 필요 없지 않아요?”     


그는 양팔을 펼쳐 날갯짓을 하듯 찬찬히 위아래로 흔들며 말했다.  

   

“스스로 날갯짓을 할 줄 안다면.”  

   

그가 날갯짓이라 하자 무영 씨의 시선은 창밖의 새가 날아갔던 곳으로 향했다. 새는 어느새 하늘 높이 그리고 저 멀리 날아갔는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날갯짓이요?”     


“새장 안에 새 한 마리가 있다 칩시다. 그 새는 새장 안의 삶에 길들여져 날기는커녕 날개를 활짝 펴보지도 못한 채로 사는 거지요. 때가 되면 일정량 주는 먹이만 먹고사는 삶. 그게 좋아서 새장에 머물러 있는 새도 있다고 하대요. 새장 문을 열어놔도 나가지 않더란 말이지요. 나간다 해도 금세 다시 돌아오더란 말입니다.

반면에 자유로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바깥세상에 사는 새가 있다 쳐요. 그 새는 처음 날갯짓을 해서 날아오르는 것이 낯설고 생소하더라도 용기를 내 날갯짓을 하다 보면 높 게든 낮 게든 어쨌든 하늘을 향해서 날아오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바람을 잘 타면 높게도 날아오르고 그렇지 못하면 낮게 날 때도 있는 거고 그러다가 모진 폭풍우가 몰아치면 잠시 날갯짓을 멈추기도 하겠지만 그러다 다시 날개를 펼칠 날도 오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나온 이상 굳이 날개를 어딘가에 붙들려 살 필요가 있냐 이 말이에요. 하하"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무영 씨에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여기까지가 무영 씨가 가끔씩 떠올리는 그 당시에 그와 나눈 특별한 대화 중 첫 번째로 꼽는 대화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무영 씨는 여기저기 면접을 봤고 전부 고배를 마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무영 씨는 사업을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길바닥에 나앉는 한이 있더라도 해보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처음 해보는 사업에 여러 가지를 준비하랴 발로 뛰며 이것저것 배우랴 좀처럼 도서관을 찾지 못했다.


당시 첫 사업을 막 시작한 지 약 6개월 후 사업이 안정적인 첫걸음을 떼자 다시 도서관을 찾았고 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으로 도서관의 문을 밀고 들어섰으나 여기저기 살펴도 그를 볼 수는 없었다. 그가 계속 도서관에 나오다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못 오는 건가 싶었고 분명 다시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음날도 도서관을 찾았으나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도서관을 찾아도 그가 나타나지 않자 무영 씨는 혹시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그 이와 이따금씩 대화를 나누던 여자 사서에게 물어보았다.     


“저 혹시 그 머리 색깔 불그스름한..”     


사서는 명랑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 그분이요? 저한테 작별인사하고 어딘가로 간다고 하시던데.. 어디라고 하셨더라.. 그”     


사서의 표정이 마치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것이 곧 기억해낼 듯도 했다.


무영 씨는 기대에 찬 모습으로 그녀의 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서있었다.


그때 도서관 직원 한 명이 멀리서 사서를 불렀다.     


“미영 씨! 이거 찾았어. 정리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 와서 좀 봐봐.”     

 

여자 사서는 직원 쪽을 향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영 씨에게 말했다.     


“아. 지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기억나면 말해 드릴게요. 분명 어디라고 했는데..”     


무영 씨는 그 후로 도서관에서 그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당시 힘겹게 갈팡질팡 하던 무영 씨의 삶에 지표를 제시해준 은인이었다. 무영 씨는 언제 한번 만나면 크게 대접을 하리라 다짐하며 도서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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