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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Jan 07. 2021

소통의 부재

단편 두 번째

이 씨는 기자이다. 독거노인의 생활상을 취재하기 위해 어디든 직접 발로 뛰며 취재를 해야 할 참이었다. ‘독거노인’ 하니 떠오른 것은 달동네였다. 달동네와 독거노인의 매칭이 썩 나쁘지 않아 ‘달동네에 사는 독거노인’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쓰면 괜찮을 터였다.

그래서 이 씨는 서울의 한 달동네를 선정한 뒤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도로 옆 주유소 뒤편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치 그리스 령의 키클라데스 제도 남쪽 끝에 있는 섬. 산토리니를 연상케 했다. 차이점은 산토리니와 같은 아름다운 색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산토리니와 같이 전체가 조화를 이뤄 하나의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시멘트로 대충 바른 담장,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한 집. 집들은 모두 제 각기였다


이 씨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멈춰 서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데가 있나..”


그때 마침 군데군데 녹이 슨 녹색 철제 대문의 집 안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이 씨의 시선은 자연스레 반쯤 열려있는 철제 대문의 안쪽으로 향했다.

이 씨가 안을 들여다보니 잔뜩 경계하는 듯한 표정의 70세쯤 돼 보이는 노인이 이 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노려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노인은 담배를 피우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이 씨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씨는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노인에게 다가갔다.


“저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 OO사에서 취재 나온 기자입니다.”


노인은 이 씨의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알 수 없으리만치 무반응으로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이 씨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귀가 어두워서 잘 못 들으셨나..'

     

이 씨는 다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아까보다 큰 목소리로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어르신! 취재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는 기자입니다.”


이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인은 이 씨를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아, 나 귀 안 먹었어. 시끄러!”


이 씨는 생각지도 못한 노인의 반응에 말을 잇지 못하고 노인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그런 이 씨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노인네한테 뭣 하러 취재를 한다는 말이야?”


이 씨는 이제 대화가 좀 되겠다 싶은지 좀 더 적극적으로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아, 저 그게 실은 요즘 사회에 문제시되는 것들 있잖습니까. 어르신, 예를 들면 어렵게 홀로 사시는 어르신 들이라던지.. 연세는 있으신데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힘드신 그런 분들 얘기를 좀..”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조용히 이 씨의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아 뭐 혼자 사는 노인네들 뭐 이런 거 물어보러 온 거야? 하, 나는 그런 건 문제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살다 보면 혼자 살기도 하는 거고, 나이는 뭐 세월 흐르다 보면 먹는 거니까 뭐 이런 게 문제야? 자연스러운 거 아니야 기자양반?”


이 씨는 노인을 설득하기 위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로 하고는 노인에게 물었다.


“저 어르신, 옆에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이 씨는 살가운 표정으로 노인에게 묻는 동시에 미리 준비해 간 누룽지 맛 사탕 한 봉지를 건넸다.     

노인은 사탕 봉지를 들어 보고는 한마디 했다.


“아니, 내가 노인네라고 이런 거 주는 거야? 노인네라고 뭐 다 이런 거 먹는 줄 알어? 탄산음료 같은 거 몰라?”     

이 씨는 당황스러운 듯 사탕 봉지를 바라보며 서있다 이내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아 어르신, 그럼 취재 끝나면 제가 탄산음료 사다 드리겠습니다. 하하”


연신 굳어있던 노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하 참, 이거 어쩔 수 없겠구먼.”

    

노인은 자기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 씨 에게 말했다.


“앉아봐 기자양반.”


이 씨는 얼른 노인의 옆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는 노인이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먼 곳을 응시하던 노인은 이내 말을 꺼냈다.


“요즘 문제는 말이지, 혼자 사는 노인네들 얘기.. 뭐 그런 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서도

나는 더 큰 문제다 싶은 게 말이야. 요즘, 사람들 간에 소통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아 기자 양반?"


이 씨는 자신이 취재하러 간 내용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 상황에 취재 얘기를 곧이곧대로 밀어붙였다간 노인의 기분이 상해 인터뷰가 어려워질까 봐 잠자코 노인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네 소통이 줄긴 한 것 같지요.”


“그럼, 얼마나 줄었다고, 자 봐봐 요즘 핸드폰은 컴퓨타도 되고 어? 테레비도 되고 응? 그거 뭣이냐 극장도 될 수 있다며? 그러면 누가 소통을 하느냐 이 말이야. 어디 갈려고 기차라도 타면 그냥 그거나 들여다보고 있을 거 아니야, 나 그런 거 많이 봤어, 예전에는 기차든 버스든 타면 옆자리 사람허구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응? 옆에 타게 된 인연으로다가 대화도 많이 허고 그랬었다고, 그런데 요즘은 다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원, 참으로 아수운 일이야.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랑 소통은 잘 안허고 저 멀리 있는 사람이랑 핸드폰으로 뭐 그거 꺄톡, 꺄톡 허니 소리 나는 걸로다가 허고 말이야.. 참 아수워. 새로운 사람 사귀기도 참 힘든 세상이 돼 버린 거 같어. 사람끼리 서로 채워주던 것들을 기계가 대신 허고 있는 거 겉으니 말이야..원"


이 씨는 취재도 잊은 채 노인의 말에 깊게 공감하며 시대가 변했음을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네,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변했구말구. 예전에는 길가다 보면 길 물어보는 사람도 참 많았었는데 말이야.. 요즘엔 길들을 잘 안 물어보는 것 같더라고. 사람들 그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아서 그걸로 다들 찾아 가나봐 허 참, 신기한 기계이긴 하지만서도 소통이 줄어든 건 참으로 아수워.. 소통이 안되니까 상대방이 열심히 말을 해도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말야. 응? 딴소리나 해대고 소통이 안돼.. 소통이..”


노인은 말을 마친 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1분이나 흘렀을까 이내 담배를 찾는 듯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이 씨를 보고선 묻는다.


“그런데 기자 양반. 왜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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