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민 Jan 04. 2021

어린이에 대한 정의(定義 혹은 正義)

아이들은 인류의 미래이다.

요즘 들어 뉴스를 보면 아동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기에 어린이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기 위해 이를 주제로 삼았다.

아동과 관련된 사고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금 어린이에 대해 살펴보고 재조명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아이들은 그냥 어린 존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다.

아이들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함에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관련 사고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어린이에 대한 사전적 정의(義)를 한번 살펴보자.



어린이

[명사]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



이 어린이라는 말은 17세기부터 써온 말인데 '어리다'의 관형사형 '어린'에 의존 명사 '이'가 결합되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때 까지만 해도 단순히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 정도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920년에 어린이날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하신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아이들을 대접하고 ‘젊은이’라는 용어와 대등한 의미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어리다고 우습게 볼게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중하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면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 정의하신 어린이라는 말의 뜻에 걸맞게 지금의 어린이들이 대우를 받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 세계를 이끌어가는 성인들 모두 한 때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어른이고 상대는 어린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고 권위부터 찾는 이들도 분명 있어왔다. 그런 이들의 반론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애들은 혼나면서 커야 한다', '자신도 그렇게 자랐다'라고 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훈육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고 자신이 그렇게 자랐다해서 아이들에게까지 그렇게 해야  당위성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자랐다면 그에 대한 폐해를 잘 알 것이므로 더더욱 악습을 되풀이 해선 안된다.

그런 것들이 분명 아이에게 있어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답습할 게 아니라 잘 못된 것은 끊어내어 이제라도 아이를 대함에 있어 새로워져야 할 때이다. 우리 모두 잘못된 것은 끊어내고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이들의 습득력은 액체를 흡수하는 스펀지와 같다. '이런 건 안 배우겠지' 하고 어른들이 무심코 하는 것들 모두 어느새 배워 행하고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장차 세계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옳지 못한 것을 배워 나간다면 아이들의 인생은 물론 나라, 나아가서는 세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하루하루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날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성인이 되어서의 일 년 보다 어린아이 시절의 단 하루가 인생에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아껴주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지킬 수 있는 정의(義)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그 따뜻함을 간직한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베푸는 것은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이전 05화 풍요로운 삶이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