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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Mar 25. 2024

꼭, 달콤해져야만 하는걸까. :)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


"야, 조고로. 내가 생각하기에 넌 결국 소시민이 못 돼."



   "달콤한 설탕 옷 위에 또 설탕 옷을 입고, 몇 겹이나 겹쳐 입는 거야. 원래는 그렇게 달지 않았는데, 설탕 옷만 달콤했는데. 표면과 본성이 뒤바뀌는 거야. 수단은 언젠가 목적이 돼.... 난 마롱글라세가 정말 좋아. 왜, 좀 귀엽잖아?" 

                                                                                                                             - 상권, p. 184. 방황하는 봄 




   . 딸기 타르트, 트로피컬 파르페, 그리고 구리킨톤까지.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소설을 빙자한 디저트 먹방물도 어느 새 3편이다. 작품의 이름 앞에 봄, 여름, 가을이 붙어있으니만큼 이 뒤에 겨울철 무슨무슨 사건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일본 현지에서도 벌써 10년 넘게 후속작이 없는 상황이니 딱히 할 말이 없다. 하긴 빙과 애니메이션이 대성공을 거둔 덕분에 국내에서도 인기작가가 된 만큼 이젠 출간만 되면 곧바로 번역될텐데, 정작 출간이 되질 않으니(....) 


   . 이쯤에서 잠깐 소시민 시리즈에 대해 잡담을 해보자면, '빙과'나 '다치아라이 마치' 시리즈가 알려지기 전에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된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이 이 소시민 시리즈였다. 옥문도의 성공으로 시작된 일본 추리소설 붐이 온다 리쿠와 미야베 미유키 두 작가를 거치며 광풍이 되고, 그 유행에 힘입어 소개된 작가들 중에 요네자와 호노부도 끼어있었다.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작가가 소개되어서였는지, 아니면 도저히 손쓸 수 없어보이던(....) 표지 때문이었는지 소시민 시리즈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묻히고 말았다. 다행히 그 다음 해에 번역된 '인사이트 밀'이 본격추리를 선호하는 팬들에게 꽤 괜찮은 반응을 얻었고, 때마침 온다 리쿠의 광풍이 조금씩 걷혀가면서 천천히 주목을 받다가 빙과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절판됐던 봄-여름 편이 출판사를 바꿔서 재간행되고 가을편까지 추가로 번역되었던 것. 역시 이쪽 장르에서는 미디어 믹스가 답이긴 답인가보다. 어려워서 그렇지. :) 




   오사나이의 이름은 유키였다.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연약해보이는 오사나이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 상권, p. 43. 따뜻한 겨울




   .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에서 고바토가 여우,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에서 오사나이가 늑대인 이유를 보여주며 소시민이 되려는 둘의 노력과 실패담을 그려냈다면, 이번 가을 편에서는 그 시도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다. 이번 편에서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소시민들 사이에 섞이고 그런 과정에서 누군가를 사귀기도 하면서 소시민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눈이 빛나면서 본성을 드러내는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교육효과(....) 라는 게 있으니까. 이제는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게 눈을 재빨리 내리까는 방법도 배웠다. 물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둘이서 사정없이 빛나는 눈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서로의 빈틈을 탐색할 때가 훨씬 짜릿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모든 것은 다 완벽한 소시민으로 거듭나는 그 날을 위하여. 정진, 그리고 또 정진. 하지만 눈을 내리깔고 생글생글 웃음을 짓는 얼굴 뒤로 꼬리가 살랑살랑거리고 있는 것까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랬어. 지난 번 데이트 기억해? 나는 혼자 눈치보느라 급급했는데 고바토 짱은 토마토만 신경썼잖아." 

   토마토라면, 치밀한 추리 끝에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날을 말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변덕스러운 인간 심리에 묻혀 내 추리는 빗나갔다. 그리고 그 날, 나카마루가 내 눈치를 보느라 급급했다는 기억은 내 머릿속에 없다. 

                                                                                                                                 - 하권, p. 146. 한여름 밤




   . 이런 모습은 특히 고바토가 이번 편에서 새로 만난 여자친구와 함께 데이트를 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에서 잘 드러난다. 여자친구와 함께 탄 버스에서 추리력을 한껏 발휘해 곧 내릴 사람을 추리해놓고 짐짓 딴척을 하며 여자친구를 빈 자리 앞에 슬쩍 세우는 이야기까지만 해도 이제 정말 여우에서 사람이, 아니 소시민이 되어가는가 싶었지만, 아니나다를까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친다는 귀띔을 듣고 만난 자리에서 여자친구가 과연 토마토를 싫어하는지 아닌지를 추리하는 고바토의 모습은 아직도 멀었다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방향 자체가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오사나이와 둘이 있을 때만 해도 전형적인 상식인 포지션이었던 고바토였지만, 소시민들 사이에 섞이자마자 이모양 이꼴인 것이다. :) 


   . 오사나이는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밤 디저트에 비유한다. 밤을 설탕시럽에 한 겹 한 겹 재우다보면 어느 새 밤 자체가 달콤해진다는 마롱글라세와, 밤을 잘 빻아서 거기에 설탕을 넣고 살짝 물기만 뺄 정도로 익혀(이걸 '덖다'고 표현한다는 걸 알았다. 번역자에게 박수를. ^^) 반죽해서 만들면 떫은 맛은 어느 새 사라지고 밤의 풍미가 깊어진다는 구리킨톤. 이번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 마롱글라세는 실패했다는 건 알 수 있지만. 그럼 과연 구리킨톤은 될 수 있는걸까. 아니 그 전에, 꼭 달콤해져야만 하는 걸까? 




   "너 뭐야? 일 년 내내 똑같은 표정이라니, 정말 뭐야? 나, 고바토 짱을 하나도 모르겠어. 차가운 사람인거야? 아니면 사람들이 다 우스워? (중략) 고바토 짱은 누구하고 사귀어도 분명 똑같을 테니까. 전 여자친구하고도 똑같았겠지?" 

   빗나갔다. 그건 아니야. 나카마루는 평생 이해 못하겠지만. 

                                                                                                                                 - 하권, p. 128. 한여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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