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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Mar 31. 2024

해답도 출구도 없이 한없이 가라앉고 싶다면

웃는 이에몬 - 교고쿠 나츠히코(북스피어)  ●●●●●●●◐○○


숨기지 않는,
꾸미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그런 강한 당신이,
세상 사람들은 무서운 게지요.
무서워서 웃는 것입니다.



   "이와 님, 잘 들으십시오. 세상의 하찮은 놈들이 당신을 보고 웃는 이유는 얼굴의 상처가 흉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그런 것을 숨기지 않는, 꾸미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그런 강한 당신이, 세상 사람들은 무서운 게지요. 무서워서 웃는 것입니다." 

   - 무서워서. 

   - 웃는다. 

   이와는 손끝으로 이마를 만진다. 세게 누르자 고름이 배어 나온다. 

   "무서워서- 웃는다니." 

   "웃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당신은 온몸으로 말씀하시니까요. 하지만 당신을 보고 웃는 얼간이 놈들은, 만일 당신과 같은 일을 당한다면 도저히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담이 작고 오기라곤 없는 잔챙이들 뿐입니다." 

                                                                                                                                         - p. 80. 다미야 이와




   . 이 400페이지도 채 안되는 얇고(교고쿠도 시리즈나 항설백물어 시리즈를 읽다가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중편처럼 느껴진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쏙쏙 들어오는 책이, 왜 이리도 복잡하고 진창처럼 느껴지는지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 이 책을 세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저 인상적인 몇몇 부분만을 훑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읽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 훑은 부분이 점점 많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전체의 이야기는 어둡고 끈끈한 수렁 속에 파묻혀 있는 느낌이고. 교고쿠도 시리즈는 설령 읽을 때는 그 장광설에 진저리가 쳐질지언정 명쾌하게 끝을 맺는데, 이 소설은 그와 반대다. 


   . 나오는 인물들부터가 읽는 이로 하여금 깊고 무거운 한숨을 토하게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작스레 얼굴의 반쪽이 무너졌음에도 그저 언제나처럼 살아가는 강한 인물이지만 그런 마음을 풀어놓지 못하는 이와. 이와의 추한 얼굴을 불쾌감이나 동정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런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에몬. 범죄를 당하고도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아이까지 낳고 학대당하며 살아가는 우메. 그렇게 장난감처럼 취급받다 버림받고 죽은 우메의 복수를 다짐하는 동생 나오스케까지. 무겁고 암울하다. 악인이 있고 그에 대한 복수가 있기에 징악은 되지만 후련하지 않고, 하물며 권할 선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젊은 무사처럼, 읽은 이 역시도 그저 '손을 모으고', '의미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다. 




   죽은 것이다. 

   그렇다. 

   무사가 살아있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드러난 상박이나 허벅다리나 목덜미 등 부드러운 피부 곳곳이 찢겨 있었다. 

   살이 뜯겨나가 뼈가 드러나 있는 곳까지 있다. 아마 산 채로 쥐나 뱀에게 물리고 먹히며 서서히 죽었으리라. 

   그런데도 - 

   무사의 얼굴은 - 

   이에몬과 이와 님입니다 - 

   하고 남자는 말했다. 


   이에몬은. 

   웃고 있었다. 

   요모시치는 손을 모으고, 의미도 없이 그저 눈물을 뚝뚝 흘렸다. 

                                                                                                                                       - p. 407. 웃는 이에몬

   



   . 이 작품은 시대배경으로 보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모든 작품 중 가장 첫 시대에 해당되는 소설이다. '후 항설백물어'를 통해 교고쿠도 시리즈와 항설백물어 시리즈가 연결되었고, 항설백물어의 마타이치가 아직 제대로 된 모사꾼이 되기 전에 경솔하게 남의 일에 개입했다가 모든 참극의 단초가 되는 사건을 저지른 채 처절하게 실패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후 항설백물어를 읽으면, 왜 마타이치가 '경솔한 말한마디나 생각없이 한 분별없는 행동으로 사람이 간단히 살고 죽는다는 걸' 알게 된 것인지, 왜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 사람의 바뀐 인생을 계속 지켜봐주고,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나타나 그의 인생을 어긋나지 않게 이끌어주는지를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와 님, 당신은 훌륭한 분입니다. 강해요. 틀리지도 않았습니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옳지도 않지요. 당신은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품을 잘 모르십니다. 자신은 아프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은 아플 수도 있어요. 당신이 아프지 않더라도 옆에서는 아프겠다고 생각한답니다." 

                                                                                                                                         - p. 81. 다미야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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