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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시울 Mar 22. 2024

지금 인류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싶다면

화성연대기 - 레이 브레드버리(샘터)    ●●●●●●●○○○


오스트레일리아 소재 원자탄 비축고 예정보다 이르게 폭발.
대륙 소멸. 로스앤젤레스, 런던에 폭격. 전쟁.
돌아오라.
돌아오라.



   "살아있는 존재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나?"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나가서 다른 도시들도 확인해봤지요. 다섯 중 넷은 수천 년 동안 텅 비어 있던 모양이더군요. 그곳의 원주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섯 중 하나는 어딜 가도 같은 모습만 보였습니다. 시체요. 수천 구의 시체 말입니다."

   "대체 뭣 때문에 죽은 거지?"

   스펜더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못 믿을 걸."

   "뭐가 죽였냐니까?"

   해서웨이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수두."

                                                                                                                - p. 116.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




   . 추리소설에 비한다면 SF는 거의 읽지 않은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몇 권 읽고나니 SF 작가들 역시 추리소설가들이 그렇듯 자신들만의 색깔이 뚜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령 아이작 아시모프는 지적이면서도 정형적인 글을 쓴다. 가끔 중간중간에 유머를 넣고는 하는데, 그 유머 역시도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교수님식 유머다. :) 그에 비하면 로제 젤라즈니는 진지함을 넘어 종종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접근을 시도하곤 한다. 필립 K. 딕은 블랙 유머에서 유머는 빼고 블랙만 남은 숙명적으로 암울한 이야기를 늘어놓곤 하고. 그럼 레이 브래드버리는? 그의 글에선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광대가 언뜻언뜻 보인다. 우스꽝스런 코를 달고 형형색색의 고무망치로 자신의 머리든 남의 머리든 가리지 않고 쳐대면서 헛소리 7에 뼈가 시린 소리 3을 마구 뒤섞어서 떠벌이는 광대.


   . 바른말을 안하기엔 광대 체면이 말이 아니니 누구 앞에서든 까딱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만한 얘기를 밥먹듯이 하고, 그렇다고 진짜 목이 날아가면 곤란하니 그 위에 헛소리를 양념으로 잔뜩 뿌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뭐가 진짜 바른말이고 뭐가 진짜 헛소리인지 구분할 수 있고, 그렇다고 바른말과 헛소리를 엉터리로 합치거나 말문이 막히기라도 하면 광대 실격이다. 결국 문학적인 향취와 사회 비판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고루고루 가지고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게 광대라면, 이 작품에서의 레이 브래드버리는 광대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




   "저는 주님께서 유머 감각을 가지신 분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스톤 신부가 말했다.

   "오리너구리에 낙타에 타조에 인간까지 창조하신 분인데요? 원 세상에!" 페레그린 신부는 웃음을 터뜨렸다.

                                                                                                                                       - p. 196. 한밤의 조우




   . 그런 그의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화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온갖 판타지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일단 사람(?)이 살고 있는 건 당연하고, 물론 그들은 외계인이니 지구인과는 다르게 생겼을 것이고, 나름 특수한 능력도 가지고 있는 등등. 하지만 개척정신에 불타는 인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화성을 개척하고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 그곳을 발전(??)시키리라. 만세(....) 그 과정에서 작가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괴멸시킨 유럽인의 천연두를 패러디하기도 하고('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 편), 당시 미국 사회의 이슈였던 환경문제와 흑백갈등을 살짝 섞어내기도 하고('녹색아침' 편,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 편), 지구인이 차지한 것은 단지 그들의 인식선상에 있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 등('한밤의 조우' 편) SF라는 도구를 가지고 이런저런 광대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다시 거꾸로 되감는다.


   . 당시 가장 큰 위협이었던 핵전쟁의 공포. 다른 SF 작가들처럼 레이 브래드버리 역시 핵전쟁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 방향은 정반대다. 일반적인 SF 단편들이 지구의 핵전쟁으로 인해 우주로 도망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리는데 비해, 이 소설에서는 화성에 정착한 사람들이 고향의 핵전쟁으로 인해 모두 귀환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 결과 겨우 번영을 맞은 화성의 지구인 정착지는 텅 비어버리고 정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몇 안되는 사람만 남아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은 천천히, 손쓸 수 없이 쇠락해간다. 이렇게 이야기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하다 스러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들은 작품 내내 이주하고, 번성하지만 그 끝에선 결국 스러져가고, 그 모든 선택은 오롯이 그들의 것이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리고 SF 장르가 으레 그렇듯, 그런 그들의 모습에선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겹쳐진다.




   "당신 혹시라도.... 그러니까, 혹시 세 번째 행성에 사람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 해 본 적 없나요?"  

   "3번 행성은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오." 남편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선언했다.

   "우리 과학자들 말로는 대기에 산소가 너무 많다고 하더군."

                                                                                                                                                    - p. 30. 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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