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민음사) ●●●●●●●●●○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면 그 느낌이 철과 동의 중간쯤 되지.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뜨거울테고.
손으로 쥐어보면 소금기가 아직 남아 있는 물고기처럼 느껴지겠지.
입에 넣으면 입 안이 꽉 찰 테고.
냄새를 맡으면 말 냄새가 나겠지.
꽃의 향기로 치면 붉은 장미보다는 국화 향기와 비슷할 걸세.
. 오르한 파묵의 책 중에서는 서로 다른 두 사상의 대립과 충돌을 주제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이름은 빨강'에서도 기존의 화풍과 새로 들어온 유럽의 화풍의 충돌을 소재로 시대의 변화를 사이에 둔 양 측의 대립을 이야기하고 있다. 술레이만 대제 하에서 이룩했던 최전성기가 한풀 꺾이며 제국의 분위기가 경직되기 시작했던 16세기 말, 중세를 넘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신에서 인간으로 대상을 옮겨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묘사하기 시작한 유럽의 미술에 비해 이슬람 미술은 여전히 화가의 독자적인 해석과 표현을 우상숭배로 몰아 엄격하게 규율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유럽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은 궁정화가이자 주인공의 숙부이기도 한 에니시테는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집을 만들고자 하지만, 근본주의에 가까운 '엘레강스'라는 화가와 서양의 기법을 도입하려던 에니시테가 차례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과연 범인은 어떤 이유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둘을 살해해야만 했는지, 그를 범행으로 이끌었다는 '최후의 한 장'은 어떤 것인지.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독자는 변화를 둘러싼 치열한 사상의 대립을 읽어갈 수 있다. 이슬람 미술 자체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야기 내내 친절하게 당시의 이슬람 미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없어도 읽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 이야기는 범죄의 진상과 범인을 찾는 지극히 정석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추리소설에서처럼 현장에 남은 흔적, 시체의 상태나 알리바이를 찾아내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독자가 할 일은 오직 범행의 동기를 찾아내고 동기와 부합하는 증언을 하는 용의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각각의 챕터마다 다른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듣는다. 주인공과 용의자, 피해자는 물론이고 범인까지 등장하여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틈바구니 사이에서 독자는 이야기 뒤에 숨겨져 있는 각각의 사상을 읽어내야 한다. 이런 서술방식은 결코 가볍지 않은 대립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게 하는데, 만약 이런 구성이 아니라 단순히 두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끼리 대립하는 내용이었다면 이 책의 재미는 확연히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전통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고 개인의 표현을 최대한 억제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에서 에니시테와 엘레강스는 각각 변화와 전통의 양 끝에 서 있고, 세 화가와 화가들의 우두머리인 오스만은 이 사이에서 각자의 철학을 풀어놓는다. 시대를 바꿀만한 거장의 독창적인 표현에 의해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거장이 아닌 일개인이 전통을 무시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전통을 옹호하는 나비, 전통과 격식 같은 어려운 문제에 얽매이기를 거부하고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장난기를 섞어 자신의 재능을 표현하는 황새, 오래전부터 여러 지배자를 섬겨온 가문에서 자라 가풍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화풍과 대가들에 의한 새로운 변화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올리브.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궁중의 화풍을 지켜오면서도 결국 그림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화원장 오스만까지. 첫 부분에 던져지는 예술에 대한 세 가지 질문에서부터 범인을 밝히기 위해 말을 그리는 장면, 그리고 범인이 밝혀지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왜 그가 범인인지, 그를 범행으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 독자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고, 여기에 이야기 속의 예화를 곱씹는 과정에서 작가의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된다.
. 또한 이 책은 주제 뿐만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 인들의 당시 생활상을 묘사하는데도 탁월한데, 두 아이를 가진 과부이긴 하지만 아직도 절세의 미녀인 세큐레와 그녀에게 빠져버린 두 남자의 대결은 살인사건만큼이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1권 후반부에서 에니시테가 살해당한 후, 아버지가 살해당해 친척이 집안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걸 막기 위해 세큐레는 카라를 불러내고 둘은 하루 이틀 사이로 숨돌릴 틈도 없이 이혼과 결혼, 그리고 에니시테의 사망신고와 장례를 마치는데, 이 부분은 급박하면서도 약간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되자 마자 카라를 불러내어 결혼하기 위한 조건들을 줄줄 읊는 세큐레와 말한마디 못하고 멍하니 듣다가 "당신은 아주 아름답소." 라고 대답하고 그녀가 시키는대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카라의 모습은 절로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아름답고 약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머리를 쓰는 척 하지만 실생활에선 꼼짝도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해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 이렇게 '내 이름은 빨강'은 중세와 근대의 문턱에서 갈등하던 오스만제국의 모습과 예술의 본질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서부터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당시 생활상, 뒷골목의 난장판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최대한 많이 담아내려 한 작품으로, 내용의 깊이나 재미, 사상의 대립이라는 주제에 있어선 '장미의 이름'과도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확실한 결론을 제시한 장미의 이름에 비해 이 소설에선 마지막까지도 전통과 변화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세큐레는 실제 자신의 얼굴과 꼭 닮은 초상화와 시간이 멈춰진 듯한 행복을 그린 그림을 모두 가지고 싶었다며 양 쪽을 전부 아우르는 듯한 소원을 털어놓는다. 변화를 대표하는 꼭 닮은 초상화와 전통을 대표하는 행복의 그림. 과연 세큐레가 진정 바라는 쪽은 - 그리고 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지. 파묵은 그렇게 묘한 여운을 남기면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