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 -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
그래요? 선생님은 저쪽에 가고 싶지 않은 거군요.
마누라와 아이를 이쪽으로 되돌아오게 하고 싶었던 것뿐이로군요.
"긴타로, 안 돼, 다시 생각하게." 목소리를 쥐어짜내듯 세키조 선생이 부른다. 그러자 간타로는 또 싱긋 웃었다. "뭣하면 선생님, 같이 가시겠습니까?"
화가 뿐만 아니라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었다. 세키조 선생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순식간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때까지도 선생에게 매달려 있던 잇페이가 겁먹은 듯이 몸을 떼었다.
"나, 나는-" 선생은 우물거린다.
"그래요? 선생님은 저쪽에 가고 싶지 않은 거군요. 마누라와 아이를 이쪽으로 되돌아오게 하고 싶었던 것뿐이로군요." 간타로의 표정에 처음으로 희미하게 나무라는 듯한 빛이 떠올랐다. (중략) 간타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여러분. 저는 잠시 작별하겠습니다."
- p. 198-199, '미망의 여관'
. 흑백 - 안주 - 피리술사에 이어 이 작품인 삼귀까지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도 어느 새 4권째에 접어들었다. 흑백의 방에서 오치카가 들어준 괴이한 이야기들이 어느 덧 스무 개 가까이 쌓이다보니 이제는 오치카가 왜 집을 떠나 숙부의 가게에 얹혀 지내는지, 왜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는지조차 앞의 책들을 찾아보지 않으면 가물가물하다. 더구나 여기에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시리즈(일명 미인시리즈)'와, '얼간이 시리즈(미소년 시리즈)'에, 중간중간 집필된 다른 괴담집까지 합치면 미미여사가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농담처럼 얘기했다던 미야베 미유키의 백 가지 괴담, '미미백물어'를 너끈히 채운 게 아닌가 싶다. 다행히 미미백물어는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아직 끝나려면 한참 남았지만. :)
. "데뷔 30주년을 축하합니다!"라는 소개가 붙은 이번 작품에서 어느 덧 중견작가를 넘어 노장을 바라보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는 절묘하게 강약을 조절해가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족을 잃은 화가의 망집이 불러온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연결, 그리고 그로 인한 혼란과 애절함을 그린 '미망의 여관'을 읽고 막막함에 사로잡혀 있노라면, 바로 이어지는 '식객 하다루가미'에선 배고픔을 참지 못해 사람에게 붙어 사는 주제에 요리를 먹고 "팥점 평가"를 빼놓지 않는 요괴(그 요괴의 성이 혹시 백씨 아닐지^^;)에 얽힌 도시락집의 유쾌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읽는 이를 따뜻하게 한다. 그렇다고 그 여운에 흠뻑 젖어 페이지를 넘기면 이번에는 첫 장부터 처절하게 고립된 산골마을과, 그보다 더 냉혹하고 씁쓸한 바깥 세상을 그린 '삼귀'가 들이닥친다. 그렇게 작가의 큰 그림 속에서 그저 들려졌다 추락하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새 책은 끝을 향해 다다르고 있다.
.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오치카를 비롯한 모두의 성장이 눈에 띈다. 그동안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던 오치카가 흑백의 방에서도, 그간의 얽매임에서도 벗어나 한 발짝 내딛는 모습을 보여주고('오쿠라 님'), 오치카의 짝으로 모두가 기대하던 리이치로 역시 마을을 떠나 어엿한 무사로 다시 새출발한다. 그 대신 넉살좋고 따뜻한 고서상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미시마야 변조괴담에 1부라고 할만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이 그 마무리가 아닐까.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백물어를 꿈꾼다고 할만큼 능수능란한 이야기꾼 답다. :)
"오우메 씨가 말씀하셨던 대로 '오쿠라 님'은 비센야를 속이고 오히려 재앙을 내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오우메 씨가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도 당연해요. 미시마야에 와 주시고 마음 속을 토해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우메의 호흡이 멈추었다. 실이 없는 눈꺼풀이 떨린다. 관자놀이가 움찔거리며 파도친다.
눈을 떴다.
그것은 가뭄으로 바싹 마른 땅에 갑자기 맑은 물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싱싱한 눈동자. 노파의 얼굴에, 눈동자만은 어린 소녀의 반짝임.
분명히 오우메는 시간을 멈춘 것이다. 맑은 눈동자의 반짝임이 그 증거다.
오우메는 오치카를 보았다.
- p. 632. '오쿠라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