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와로 수사집 - 애거서 크리스티(해문) ●●●●●●◐○○○
데이븐하임 부부가 똑같은 침실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첫 단편집이자 포와로와 헤이스팅즈 콤비가 등장하는 세 번째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이 진짜 세 번째인지는 좀 의문이 있는데, 첫 번째 단편인 '서방의 별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가 전작인 '골프장 살인사건'에 나오기도 하고, 헤이스팅즈가 여전히 미혼인 것도 그렇다. 아마도 단편은 장편을 쓰는 도중에 지면을 통해 하나하나씩 발표하고, 그걸 묶어서 뒤늦게 책으로 출판을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기야 애거서 크리스티는 다른 작가들처럼 작품과 작품간의 연결고리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작가는 아니었으니 추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 반대에 있는 작가가 코난 도일인데, 작품마다 꼬박꼬박 연도와 월을 적어넣어준 덕분에 덕질하기가 참 좋다(....)
. 아무튼 열 네 개의 단편들로 이뤄진 이 작품은 헤이스팅즈가 포와로의 사무실에 얹혀살면서 사건에 직접 뛰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건을 기록해나가는 상당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 간다. 거기에 트릭 역시도 대상을 바꿔치거나 잘못된 정보를 부풀리는 등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을 원형으로 하고 있는데, 막상 실제로 보기에는 전부 다른 것 같은 게 트릭 마스터(^^;)로서의 크리스티의 솜씨다. 작품들 중 두세편 정도는 모험담이거나 독자가 알 수 없는 정보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흔히 하는 말로 '정정당당하게 독자와 한 판 붙어보는' 유형의 트릭들이니 승부해 볼 맛이 난다. :)
. 꼽을만한 작품은 두 명의 용의자 중 수상을 납치한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였던 '납치된 수상', 코난 도일의 빨강머리 클럽을 떠올리게 하는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당시 한창 이슈가 되었던 투탕카멘 무덤의 발굴과 저주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이집트 무덤의 모험'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 중에서도 사라진 은행장의 행방을 찾는 '데이븐하임 씨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의 현장에 남은 음식들을 보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은 단순하면서도 진실을 살짝 뒤틀어낸 트릭과 코믹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 수작이라 강력 추천.
"커피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진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진했습니다." 포와로는 한 번 더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쌀을 넣은 수플레엔 거의 손을 안 댔다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리라 생각합니까?"
- p. 234.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 이렇게 이 단편집은 매력적인 트릭이 등장하는 것과 함께 포와로와 헤이스팅즈의 이미지가 완성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단편집에서 헤이스팅즈는 또다시 여자에 반하고 - 특히나 적갈색 머리칼을 가진 여자에겐 여지없이 넋이 나가버린다(!!) 별로 대단치 않은 추리능력인데도 가끔은 이정도면 내가 탐정을 해도 괜찮지 않냐며 우쭐거리다 여지없이 포와로에게 한소리를 듣는다. 포와로도 사막에서 축축해진 콧수염을 보며 슬퍼하기도 하고, 회색 뇌세포를 강조하면서 항상 자기자랑을 늘어놓기 일쑤에 헤이스팅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가끔은 우쭐한 헤이스팅즈를 골려먹기까지 한다. 이렇게 다른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군소리 없는 한 쌍은 아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더 귀엽고, 여기에 천성이 선량하고 서로를 의지한다는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이 명콤비는 그렇게 홈즈와 왓슨 같은 좋은 짝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
"유능한 탐정은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요? 여러분의 기분은 잘 알겠소. 명탐정이라면 원기왕성하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거라고 말들 하시겠지. 모래투성이의 길에 납작 엎드려서 조그만 확대경으로 타이어 자국을 찾으면서. 담배 꽁초나 떨어져 있는 성냥개비를 모으거나.... 어때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덤벼들 듯한 눈으로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불초.... 에르큘 포와로는 그렇지 않소!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 이 속에 있어요 - 여기에." 그는 이마를 때려보았다. "알겠소? 나는 런던의 내 방에 잠자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문제는 모두 이 속의 작은 회색 뇌세포에 달려 있단 말이오. 아무도 몰래 이 뇌세포가 살짝 일을 진행해 나가거든. 그러면, 그러는 동안 갑자기 나는 지도를 꺼내어 손가락을 어떤 지점에 놓는 겁니다.... 그래....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되지요. 수상은 바로 여기에 있소.... 하고. 사실 그대로요!"
- p. 190. 납치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