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야스미 (검은숲) ●●●●●●○○○○
이쪽 세계에는 나, 이모리 겐이 존재하고 저쪽 세계에는 도마뱀 빌이 존재해.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쪽의 꿈이 다른 쪽의 현실에 해당해.
. 사실 이 소설에 대해선 뭔가를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들쭉날쭉 편차가 크기 때문인데, 어떤 부분은 괜찮다 싶다가도 또 몇 장을 넘기면 이건 대체 뭔가 싶은 부분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전체를 통틀어 이 책은 이랬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의도적인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작가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의 세계관만큼이나 두서없고 종잡을 수 없었다.
. 그래도 어쨌거나 소개를 먼저해보자면, 이 이야기에서는 앨리스(우리가 아는 동화 속 그 앨리스다)의 세계와 주인공인 구리스가와 아리(현실)의 세계가 나란히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엔 세계는 전혀 별개로 흘러가고 인물들이 오가면서 접점이 생기는 게 보통인데, 앨리스 죽이기의 이야기 속에서 두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양쪽 세계에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한 세계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다른 세계의 '캐릭터'도 비슷한 형태로 죽는다. 범인은 이 연관성을 이용해 범죄를 일으키고, 그런 설정이다보니 다른 세계의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이렇듯 연관성은 이 소설을 진행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 이런 설정을 보면 문득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떠오르지만, 가볍다 못해 경박하게까지 느껴지는 작가의 문체는 소설을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끈다. 그렇잖아도 혼란스러운 앨리스의 세계관인데 작가는 이야기 내내 비꼼과 되물음이 뒤섞인 대화와 인물들의 단순하고 우악스러운 행동들, 잔인하지만 마치 아이들의 장난처럼 천연덕스럽게 벌어지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소설의 분위기를 영 종잡을 수 없게 몰아간다. 이런 점은 소설의 호불호를 가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 결국 범죄와 혼란과 반전이 있고, 그 혼란으로 인해 누군가는 재미를, 누군가는 불쾌감을 표시할 법한 소설이다. 상대적으로 약한(과연 이걸 추리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망설여지는) 추리의 약점을 독특한 설정과 문체를 통해 메꾸고, 중간중간 계속 다른 세계에서의 캐릭터를 맞추는 자잘한 수수께끼들을 흩뿌린 덕에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추는데도 성공했다. 한끗만 엇나갔어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생각보다 선방했다고 해야 할까. 다만 국내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작가이고, 익숙하지 않은 구성인데도 무려 2018년 최고의 역주행작이 되었다는 건.... 글쎄.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그 점일지도 모르겠다. :)
"왜 우는거지? 체셔 고양이가 물었다.
"세계가 멸망하니까. 아주 좋아하는 곳이었는데."
"세계는 멸망하지 않아. 그냥 꿈 하나가 끝을 맞이할 뿐이야."
"우리에게는 이 꿈이 세계였어."
"그것도 역시 꿈에 지나지 않아. 꿈은 꿈이지. (중략) 붉은 왕은 깨어났다가 잠들고, 잠들었다가 깨어나, 얼마 안 지나서 또 다음 지구의 꿈을 꿀 거야."
"다음 지구가 좋은 곳이기를."
안녕, 앨리스.
- p.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