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유명함에도, 그 유명세보다 훨씬 더 훌륭한 소설

ABC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해문) ●●●●●●●●●◐

by 눈시울


"여러분은 핀을 가장 찾기 어려울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핀꽂이에 꽂혀 있을 때입니다."



"죽음이죠. 불행하게도 죽음은 편견을 갖게 합니다. 조금 전에 아가씨가 내 친구 헤이스팅스에게 한 말을 들었습니다. 동생은 남자친구도 없는 착한 애라고 했죠? 물론 아가씨는 그를 신문기자로 착각하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것은 젊은 처녀가 죽고 나면 으레 하는 말이지요. 그 아가씨는 행복했고, 착했다느니, 걱정거리도 없었고, 나쁜 친구들도 없었다느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죽은 사람을 감싸 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지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나는 지금 범인을 찾고 있습니다. 사건 해결에 필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나는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메건은 담배를 피우면서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그 애는 바보였어요."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함께 너무나도 잘 알려진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 명탐정 코난 같은 경우는 아예 이 소설 전체를 오마주해서 만든 에피소드도 있다(화염속의 붉은 말 편). 유명하기로 치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추리소설 전체를 대상으로 해도 10위권 안에 들어갈 책이고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편역까지 되어 있다보니 으레 'ABC? 알지^^' 하면서 대강 넘어가고 다른 책을 집어드는 게 보통인데, 그러다 맘먹고 읽게 되면 이정도로 대단한 책이었나 싶어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나 역시도 읽기 전에는 명작이니까 적당히 동그라미 8개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했는데, 읽고 나서는 10개를 줘야하지 않나 꽤나 고민했다. :)


. A로 시작되는 이름의 마을에서 A로 시작되는 이름의 사람이 살해당하는 걸 시작으로, 거기다 의기양양한 범인이 포와로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보내서 범죄를 예고한다는 줄거리 자체는 이젠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읽고 나면 그 루틴에 끼어있는 절묘한 변칙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왜 D의 순서에 이름이 E로 시작하는 남자가 죽었을까. 왜 C의 범행을 예고하는 편지는 늦게 도착한걸까. 물론 추리소설에서 - 그것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추리소설이라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아무도 없다.


. 정교하게 짜여진 기계적인 밀실이나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는 알리바이가 없는 이 소설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오직 논리적인 추론과 심리분석에 기반해 사건을 이끌고 간다. 추리소설을 접하면 접할수록 과학이나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이런 직관적인 추리를 가지고 좋은 소설을 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데, 그런만큼 추리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독자라도(나 역시도 국민.... -_-; 아니 초등학교 때 읽은 소설이다^^;) 상대적으로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러니 한 번은 꼭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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