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스릴러 혹은 칙 누아르의 유행 외

미스테리아 2호 - 엘릭시르

by 눈시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는
지금으로 말하면 라이트 노벨에 해당하는 소녀소설이었다.



창작물은 읽는 이의 욕망을 모아 분출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독자 역시 그걸 바라고 독서를 한다. 문학은 단순히 그런 욕망을 처리하는 것뿐이라고만 생각하면 거기에는 비판도 의문도 비평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불순물을 한 가지 넣음으로 해서 독자들이 백 퍼센트 만족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본래의 문학이다. 독자의 욕망이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p. 80. 오쓰카 에이지 인터뷰 - 문학, '순수하고 숭고한 존재라는 착각'




. 가정 스릴러(칙 누아르)의 유행 - 대문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관련하여

. 오쓰카 에이지 인터뷰 - 문학, '순수하고 숭고한 존재'라는 착각(순문학 논쟁과 관련하여)

.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론 2편

. 리뷰들(책과 영화 - 제임스 엘로이의 '아메리칸 타블로이드' 등)

. 단편소설 - 곽재식의 '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수군거림' 외 2편




. 2015년 가을에 나왔던 미스테리아 2호에서는 '가정 스릴러'라는 테마로 길리안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비롯해 가정을 배경으로 한 미스테리 물을 다룬다. 지금에 와서야 페미니즘이 어디서든 당연히 얘기되지만, 아직 '82년생 김지영'이 나오기도 전, 이슈란 이슈는 온통 정치권으로 쏠려 있던 상황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기획기사를 낼 수 있었던 엘릭시르 편집부의 촉(?)에 감탄하게 된다.


.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를 죽 읽은 독자라면 가정 스릴러? 그게 이제와서 뭐가 새롭나 싶을 수도 있지만(그러고보면 크리스티 여사가 다루지 않은 장르가 있기나 한가 싶다^^;) 크리스티 같은 경우는 딱히 틀에 박히거나 목적이 우선이 된 성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별을 불문하고 건덕지만 있으면(....) 죄다 범인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런 작품들 중에 가정 내 폭력이나 범죄를 다루는 작품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좀 다르긴 하다. 최근에 나오는 칙 누아르는, 일단 '이래야 한다'라는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기 때문에 누가 가장 나쁜 놈인지에 대해선 추리고 트릭이고를 떠나 작가 이름과 인물 설정만 봐도 훤히 알 수 있으니까. 달리 말하면, 그게 가정 스릴러 장르를 달고 나온 대부분의 소설들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야기 그 자체보다는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우선시 된다는 것.


. 여기에 이번 호에서는 오쓰카 에이지의 순문학 논쟁도 꽤 읽어봄직하다. 하긴 찰스 디킨스나 제인 오스틴까지 갈 것도 없이,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만 해도 삽화만 없을 뿐(그 시대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토미의 '크림색의 통통한 볼'을 묘사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으니까. 덕분에 지금도 '스트레이 쉽'만큼이나, '크림색의 피부'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




순문학이라는 용어는 전후의 산물이다. '대중을 상대하지 않는 순수한 소설'이라는 개념이 일본의 근대문학사 속에서 언제부터 존재했느냐 하면, 거대해진 출판사가 순문학을 보호하려고 하면서부터다. 그 전에는 (지금은 순문학 작가라고 하는) 나쓰메 소세키도 마이니치 신문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소설을 썼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는 지금으로 말하면 라이트 노벨에 해당하는 소녀소설이었다.

- p. 79. 오쓰카 에이지 인터뷰 - 문학, '순수하고 숭고한 존재'라는 착각




. 책 말미에 실린 1948년 말의 서울을 배경으로 한 곽재식의 '범인이 탐정을 수사하다'는 이번 호에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자신이 남편을 죽인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가 유명 탐정사가 연속 살인사건의 범인을 조작해서 명성을 얻고 있다고 조사를 의뢰하면서 사건이 시작되고, 거기에 해방전후의 연대표가 얹어져 훌륭한 한 편의 미스테리가 완성된다. 그래서 읽고 나면 내가 한창 편식하고 있던 동안에도 한국의 추리소설 역시 튼실하게 성장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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