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땐 진중하고, 읽고나면 긴 여운이 남는 기담집

금빛 눈의 고양이 - 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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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욕은 사람을 현혹시킨다.



'사'가 생활을 위해 '상'으로부터 삯일을 받고 품삯을 얻는다. '상'은 '사'에게 머리를 숙여 삯일을 부탁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어 '사'보다 풍족하게 산다. '사'가 베껴 쓴 책을 빌려 있는 것은 서책의 내용에 따라 '사'보다도 고귀하거나 유복한 사람인가 하면,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 사는 공동주택의 안주인이나 뺨이 붉은 상가의 하녀이기도 하다.

- p. 414. 기이한 책 이야기




. 보통 '미야베 월드 2막'이라고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에는 세 가지 시리즈가 있다. 에도의 혼조-후카가와라는 지역(지금 도쿄의 고토 구에 해당한다)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무사 헤이시로와 그의 미소년 조카인 유미노스케가 등장하는 '얼간이' 시리즈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는 오하쓰와 산술을 좋아하는 멍한 청년인 우쿄노스케의 모험담을 다룬 '미인' 시리즈,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처녀 오치카가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미시마야 변조괴담'이 있다. 그렇다보니 같은 미야베 월드 2막 내에서도 이야기에 맞춰 얼간이 시리즈는 정통 수사물에 가까운 반면 미인 시리즈는 좀 더 알콩달콩한 느낌이고, 미시마야 변조괴담은 약간은 무겁고 진중한 휴먼드라마의 느낌이 있어서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갈리기도 한다.


. 그렇게 초기에는 세 시리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오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얼간이 시리즈와 미인 시리즈는 나오지 않고,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만 나오고 있다. 작가 역시 이 시리즈만으로 백물어(괴담이나 기담을 가지고 백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를 내는 게 일생의 과업이라고 말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오하쓰와 우쿄노스케가 등장하는 미인 시리즈를 선호하다보니 좀 아쉽긴 하지만. :)


. 그래서인지 초기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가는 두 시리즈에 비해 유독 미시마야 변조괴담만큼은 단편들이 진행됨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 시리즈가 시작할 때만 해도 큰 상처를 입었던 오치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상처를 딛고 성장해가고, 다들 이어질거라고 예상했던 주요조연이 뜬금없이 하차하기도 하고, 다른 인물이 또 등장하는 등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순서 상으로 찬찬히 시리즈를 따라왔다면 그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마블시리즈 같은 느낌도 좀 있긴 한데, 마침 이번 '금빛 눈의 고양이'에서는 '엔드게임' 급의(^^;) 큰 변화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그래서 읽고나면 왜 유독 이 시리즈만 인물이 아닌 '미시마야'라는 지명이 시리즈의 이름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 앞서도 언급했듯이 추리나 모험이 메인 스토리가 되는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미시마야 변조괴담은 그저 주인공이 '흑백의 방'에 앉아 마음의 응어리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오치카 역시도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자연스레 다른 시리즈와 달리 정적이면서 묵직하고, 듣고나면 여운이 깊게 남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역시도 그렇다. 시댁에 아이를 빼앗기고 친정으로 쫓겨 온 며느리가 '아욕'을 포기하지 못하고 악한 요괴를 불러들여 한 집안 전체가 손쓸 도리 없이 차례차례 무너져버리는 '열어서는 안되는 방'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일품이다. 가난하지만 올곧은 몰락 무사가 딸의 치료를 위해 기이한 책을 필사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 과정을 지켜본 세책방(필사집)의 어린 후계자가 자신 역시도 그 책의 무게를 감당하기로 다짐하는 -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오치카가 그 책의 무게를 나누어 지기로 결심하는 '기이한 책 이야기'도 그 뭉클한 느낌이 오래도록 기억될 단편이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흑백의 방이 있기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가 다른 대표작이 아닌 이 시리즈를 일생의 과업이라고 말한 것인가보다.




"다시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디에서 함께 살 것인가. 미요시야인가. 아니면 이혼을 물러달라하고 시댁으로 돌아가거나 시어머니도 전남편도 죽어 시댁이 몰락하고 아이들을 키울 사람이 없어지면 되는 것인가.

이런 소원은 서원이 아니다.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만 쌓이고, 악의가 없어도 아욕이 맺히고 만다.


그리고 아욕은 사람을 현혹시킨다.

- p. 67. 열어서는 안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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