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등
<고전문학>
1. 어느 고쿠라 일기 전 - 마쓰모토 세이초(모비딕), ●●●●●●●○○○
- 집념과 허무, 노력과 상실이 뒤얽힌 짧고 탄탄한 단편집.
'청색단층', '돌 뼈', '국화 베개', '어느 고쿠라 일기 전'처럼 더없이 씁쓸한 몰락 이야기를
냉정한 눈과 무덤덤한 어조로 따라가는 세이초에게선 추리작가로서의 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2.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 에드거 앨런 포(시공사), ●●●●●●◐○○○
- 에드거 앨런 포의 유일한 장편이자 그의 다른 어떤 소설들과도 같이 묶기 쉽지 않은 독특한 소설.
모험물인 것 같으면서도 공상과학적인 측면도 포함되어 있고, 공포물인가 하면 범죄물의 느낌도 있다.
섬세한 감정묘사와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적 사건들, 섬뜩한 분위기는 고딕 공포물과 제일 유사했지만. 글쎄.
3. 반쪼가리 자작 - 이탈로 칼비노(민음사), ●●●●●◐○○○○
- 선과 악에 대한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이면서도 굵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
순수한 악의 자작과 순수한 선의 자작이 벌이는 소동들도 재미있었고,
결말에 이르러 둘이 합쳐졌음에도 세상은 아주 복잡해서 행복을 이룰 수 없었다는 후일담도 묵직했다.
4. 목요일이었던 남자 - G. K. 체스터튼(펭귄클래식), ●●●●●○○○○○
- 브라운 신부의 작가가 쓴 장편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해서 꽤 기대를 했었는데,
미스테리라기보다는 철저하게 논리와 상징으로 쓰여진 일종의 우화에 가까운 이야기.
비유와 절규와 소동과 혼란이 고루 섞인 이야기를 읽고 나니, 브라운 신부님이 그리워진다.
5.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 ●●●●●●●○○○
- 극도의 가난과 보답받지 못한 삶. 이 모든 암담함을 읽어낸 끝에 마지막에서 만나는 충격은
몇 번이고 책을 덮을 뻔하면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읽어내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 이런 경험을 하려고, 전혀 다른 곳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게 되는 거지.
6. 헤밍웨이 단편선 1 - 어니스트 헤밍웨이(민음사), ●●●●●●◐○○○
- 대화 위주의 짤막짤막하게 끊어지는 단문들, 어디서부터인지 시작도 끝도 짐작가지 않은 채로
작품 깊숙한 곳에 녹아들어있는 체념과 냉담. 헤밍웨이는 기승전결이라는 익숙한 구조가 아니라,
삶의 어떤 한 장면을 그대로 떼어내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낯설고 고단했다.
<현대문학>
1. 그저 좋은 사람 - 줌파 라히리(마음산책), ●●●●●●○○○○
- 갈등을 다루지 않을 수는 없지만, 갈등 그 자체보다 삶을 공들여 그려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인물들은 조근조근한 문체를 통해 정물화의 한 장면처럼 멈추어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움직이고,
그렇게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에 우리는 그들을 사건의 도구가 아닌 삶의 주체로 파악하게 된다.
2. 불의 산 - 쓰시마 유코(문학과지성사), ●●●●●●○○○○
- 고후 지방에 터를 잡은 네 명의 누나와 막내아들로 이뤄진 가족이 '그 시대'를 거쳐나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
일련의 모습들이 더없이 섬세하고, 아련한 감정을 잘 잡아낸 문장으로 묘사되고 있어서
가끔씩 나오는 후지산과 돌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만 질끈 감고 넘기면(^^;) 이야기에 깊이 잠겨들 수 있다.
3. 화이트 래빗 - 이사카 코타로(현대문학), ●●◐○○○○○○○○
- 팬심이 있기에 더욱 씁쓸했던 소설.
이쯤되면, 이사카 코타로는 너무 오래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것까지 참아내는 게 팬심이라면, 너무 혹독하네.
4. 검의 대가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열린책들), ●●●●●●●○○○
- 19세기 마드리드를 배경으로, 검이 목숨을 건 도구가 아닌 취미의 영역이 된 시대에 평생 잡아온 검과 함께
시들지언정 꺾이지 않고 서 있는 늙은 검술선생의 낭만적인 이야기.
그래도 아직 뭔가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지켜나가는 이의 모습은 바랜 빛임에도 여전히 눈부시다.
5.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 ●●●●●●○○○○
- '나'도, '쥐'도, 한 손의 손가락이 넷인 그녀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소녀까지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거듭 질문을 던지지만, 누구도 그 답을 구하지는 못한다. 그렇게 그들은 답이 없는 질문에 매달려
고립되어 갈 뿐이다. 그 질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나와 쥐에게도, 하루키에게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6. 엔도 슈사쿠 단편 선집 - 엔도 슈사쿠(어문학사), ●●●●●●◐○○○
- 어디로 가야할 지 알고는 있지만 - 최소한 다른 방향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그곳으로 갈 수 없는 -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말하는 위로가 담긴 단편집.
종교 이전에 방황하고 번민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기에, 그의 작품은 종교를 넘어서 읽히는 것일 테지.
<한국문학>
1.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문학동네), ●●●●●●○○○○
- 기억과 혼돈을 넘나드는 자아를 상실해가는 인간이라는 추리소설에서 볼 법한 주제.
김영하 특유의 위트 있는 문장과 읽는 이를 조여가는 탄탄한 전개, 슬림하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거기다 몇 가지 키워드까지 적당히 넣어주니, 이래저래 읽힐 수밖에 없는 책이다.
2. 서른의 반격 - 손원평(은행나무), ●●●◐○○○○○○
- '반격'은 있을지 몰라도
'서른'은 없었던 소설.
대학 처음 들어갔을 때 복학생 선배가 딱 이렇게 열변을 토하셨었지.
3.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박상영(문학동네), ●●●●●●●◐○○
- 대충 요즘 유행하는 키워드 몇 개 집어넣고, 안전하게 우리 편 저쪽 편 구도 답습해서
괜찮아, 저쪽 편이 잘못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런 편견으로 굳어진 머리를 여지없이 후려치는 좋은 소설.
그간의 암묵적인 협정(?)을 깨버리는 패기와 감각적이고 잘 계산된 문장. 거기에 엄청나게 웃기기까지 하다.
4. 7년의 밤 - 정유정(은행나무), ●●●●●●●●◐○
- 이해받을만한 부분도 이면도 없는 '순수한 악'으로 뒷받침되는 확실한 선악구조,
빠르고 리듬감 있는 진행, 세밀하고 섬세하고 부분부분 아름답기까지 한 묘사에, 무엇보다도 '잘 읽힌다.'
책을 읽으며 이런 느낌을 받을 때에야말로, 문장에 '쫄깃쫄깃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건가보다.
5. 검은 꽃 - 김영하(문학동네), ●●●●●●●○○○
- 일제강점기 직전 멕시코에 팔려가 에네켄 밭에서 살아남는 1부나, 중남미 밀림 한 켠에 '신대한'을 세우고
멸망당하는 과정을 그린 3부 모두 너무나 재미있어서 매일매일 읽을 분량이 끝나가던 게 아쉬워지던 이야기.
다시 한국소설을 읽자고 맘먹고 가장 처음 김영하 소설을 두어 권 읽었는데, 이래서 김영하김영하 하는구나.
6. 침이 고인다 - 김애란(문학과지성사), ●●●●●●○○○○
- 김애란의 책을 읽으며 참 좋은 눈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나 절망이나 자학을 말하기 이전에
그녀의 이야기는 일단 구질구질하고 시시하며, 생생하고 집요하다. 더군다나 그들이 지하철 6호선을 타고
273번 버스를 타며 여기저기 헤매고 있으니, 그 이야기가 어떻게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7. 오버 더 초이스 - 이영도(황금가지), ●●●●●◐○○○○
- 과수원 사장님의 간만의 신작. 티르 스트라이크의 고생담이 한껏 업그레이드 되어 이번엔 '왕',
그것도 '식.물.왕.'을 다루며 '동물과 식물의 대립'을 넘어 '왕좌의 정통성'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제발 그놈의 과수원 농사 좀 망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