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허영심 때문이지요. 한껏 뽐내면서, '에르큘 포와로가 얼마나 똑똑한지 보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단 말입니다."
- p. 324.
. 이집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구성에 있어서도, 드라마틱한 측면에 있어서도 손꼽힐만큼 수준높은 걸작이다. 추리 부분이 좀 복잡하고 트릭이 너무 미세한 틈을 억지로 벌어서 열린 것에 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흠결이 있는 건 아니라서. 오히려 취향으로 보면 이런 류의 추리를 좋아하는 쪽이 더 많을 거 같기도 하고. :)
. 등장인물 대부분이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건 얼핏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집중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이 소설은 각자의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중심 줄거리와 서로 다른 모양으로 얽혀지면서 때로는 혼선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게 이 작품을 더욱 다양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고. 물론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주는 감동은 추리소설 - 더 나아가 이야기들 중에서도 특출난 것이고,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직접 흔들어대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지만', 머리로만 생각해보자면 이야기의 완성도에 있어선 나일강의 죽음이 더 위일 수도 있다. 나는 아무래도 머리보다는 마음에 더 흔들리는 쪽이라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더 위에 두게 되지만.
. 거기다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자가 각자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라는 점'이 영상화하기엔 - 그것도 호화캐스팅을 할 때에는^^; - 더없이 좋은 부분이고, 여기에 낭만적이고 극적인 매력까지 더해지니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 이 소설은 벌써 수차례 영상화되었고 2017년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이어 케네스 브래너의 애거서 크리스티 영화화 2탄으로 2022년에 개봉되기도 했다.
. 개인적으로는 갤 가돗, 케네스 브래너, 러티샤 라이트를 캐스팅한 이번 영화도 부족함은 없지만, 그래도 78년에 제작된 피터 유스티노프 주연 영화는 정말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미아 패로가 진주인공인 재클린 역을 맡고, 베티 데이비스 여사님에 매기 스미스 여사님(해리포터와 다운튼 애비에서 각각 맥고나걸 교수님과 크롤리 부인 역할을 맡으셨던 그 매기 스미스가 맞다)이 바워즈 간호사 역을 맡아 젊었던 시절의 우아하셨던 미모를 보여주신다. 거기다 선량하고 아름다운 로잘리 역으로는 무려 올리비아 핫세(!!!!)가 나오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10년이 지난 시점에 찍은 영화라 귀여움은 덜할지 몰라도, 오히려 볼살이 빠져 가련해지고 청초한 느낌까지 주니 아름다움의 클라스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라니 이게 대체 소설 리뷰인지 대배우들의 미모 감상 리뷰인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