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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9. 2024

'도'를 아십니까

나는 나무처럼 살고싶다 / 우종영

'도'를 아십니까?



대학 시절 한 학기 함께 보내고 휴학을 한 동기가 어느 날 연락 해왔다.

제법 잘 지냈던 동기였다. 누나이기도 했던 나는 녀석과 약속을 잡고 만났다.

약속 장소에는 녀석만이 아니었다.

낯선 여자분이 함께였다.


'혹시 여자친구인가?' 하는 내 생각은 빗나갔다.

나는 카페에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힘든 건 '도인'에 붙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절절매는 자신의 모습이었. 보태서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볼 거라는 생각이었다.





'도'를 아십니까?


내가 아는 '도'를 묻는 사람은 늘 타인이었다. 길거리에서 숱한 도인들의 컨택이 있었지만 끝내 그들을 따라가진 않았었다.

이번엔 다르다. 가깝다 여겼던 녀석이 옆에 앉아있다. 녀석에게 S.O.S 눈빛을 보내보지만 어쩐 이유에선지 녀석은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기이한 현상이라기엔 모든 상황이 짜증스던 나는 대차게 일어나 카페를 나가는 대신 그들을 쫓아 '제'를 올리러 갔다.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 난 설득당하지 않을 자신 있어!'

(이미 설득이 아니라 집착에 달라붙어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분명 심신이 약해 어느 곳에든 기대고 싶었으리라. 고로 나는 그저 녀석을 위해 '제'를 한번 올려주고 다신 녀석과 연락하지 않으리라. 나쁜노므시끼.'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느 가정집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다세대 주택 2층이었으리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현관에 신발이 넘쳐난다. 방은 3개다. 녀석과 낯선 여인은 나를 중년 여성에게 소개 후 옷을 갈아입으라 했다.


3개의 방 중 작은방에 들어가니 나랑 비슷한 표정으로 어버버 한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셋은 그들이 내어준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곤 큰 방으로 안내했다.

녀석은 속 좋은 표정으로 '누나! 운이 좋다. 오늘 세 명이서 같이 제사 지낼 거야'


'내가 다신 네놈 만나나 봐라!!' 욕이 안에 넘쳐나는데도 그 안에서 내가 믿을 사람이라곤 녀석뿐이었다.


큰 방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복을 입은 세명의 여자는 알려주는 대로 제를 올렸다. 자신이 가진 만큼의 성의(돈)도 올린다. 한 달 치 생활비 10만 원이었다.(생각해 보면 5만 원만 있다고 했어도 될 텐데 정말 있는 걸 탈탈 털었다)


제를 올리고 옷을 갈아입은 뒤 남은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한 젊은 남자가 온화한 표정으로 작은 상 앞에 앉아있었다. 작은 상 위엔 책이 놓여있었다. 그는 내게 우주의 섭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해봐라. 내가 넘어가나!!.....


 어?.... 이거 좀 일리가 있네??  아냐 아냐 정신 차려!!!'



돈 뜯어내는 사기행위에 그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체계적인 모습에 놀랍기도 했다.


세상에 서툴다 못해 거절 못 하는 나를 비롯한 두 명의 여자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그곳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헤어졌다. 부끄러웠으리라.






그리고 녀석을 피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아닌 남편에게 말이다(남편은 같은 학교 동기였다). 녀석이 한 번 만나자고 했단다. 남편은 거절을 했다. 그날 밤 나는 녀석을 따라가 '제'를 올렸던 이야기를 했다.


흠.


남편은 박수를 치며 웃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녀석과 친했던 남편도 같은 곳에서 '제'를 올리고 연을 끊었다고 한다.


부창부수가 여기에 적합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녀석은 여전히 '도'에 대한 배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따금씩 연락해 오지만 남편은 편하게 만나 이야기할 거 아니면 만나지 말자고 전했다.


그렇게 또 수년이 지나 남편과 나는 가끔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녀석이 그곳에 마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이 하는 배움이 내가 성장하려는 배움과 뭐가 다를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책을 읽고 필사하면서 녀석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해 볼 수 있었다.

'나무 의사' 우종영 님은 지인에게 나무가 주는 삶의 가치들을 전하려 한다. 만나기만 하면 나무이야기다. 그의 마음처럼 녀석도 우리에게 그러지 않았을까. 모두를 이해한다고 해서 그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므로.


좋은 걸 나누려는 이의 마음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좋은 걸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의 마음의 벽도 그만한 의미가 있다.


내가 지인들에게 책과 필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권하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각자 자리에서 저마다 삶은 의미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도'는 모른다.

이제 겨우 ''을 알아가는 중이다.











겨울이 되면
가진 건 모두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
.

나무 의사로서
나무를 돌보는 오늘도
나는 다시금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 얘기 빼고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진득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에게
나무 이야기는 따분하기만 한
관심 밖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친구는 참다못해 나에게
참 한가로운 소리나 하고 있다며
핀잔을 준 적도 있었다.

나는 아내의 말처럼
참 끈질긴가 보다.

사람들에게
내 가장 친한 친구인 나무를
자랑하고 싶어서
결국은 이렇게 책까지 썼다.

왜냐면 그 친구에게는
분명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잊고 사는,
그러나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삶의 가치들임을 확신한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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