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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Jan 17. 2024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그는 존재하느냐 물었고, 나는 망설였다.

그는 너답게 세상에 존재하느냐 물었고, 나는 그렇지 못했노라 답했다.

그는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냐 물었고, 나는 '이제야 바램로 존재 중입니다.'라고 답했다.


실존하라_

수없이 부서지고 낮고 어두운 곳을 찾아 숨던 시절이 이제야 허리를 폅니다.






상처의 에너지야.
너의 치유와 나의 치유를
나눌 수 있는 타자가 없어.

내가 없어.
전부 낯선 타자뿐이네.

사회적 병폐, 악, 우리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그것까지도
'끌어안는 것',
그게 추위를 느끼는 거야.

추위를 함께 느껴야 한다네.
추위 속에서 타자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196p>









 보들레르를 보게.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면
그가 말하는 추위를
우리가 같이 느낄 수 있어.

보들레르의 시를 읽으면
보들레르를 아는 거야.

남을 아는 거야.
보들레르의 시를 가지려면
그의 상처도
같이 가져야 하는 거라네.









"선생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당신의 삶과 죽음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겠습니까?"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촛불은 끝없이 위로 불타오르고, 파도는 솟았다가도 끝없이 하락하지.

하나는 올라가려고 하고 하나는 침잠하려고 한다네. 인간은 우주선을 만들어서 높이 오르려고도 하고, 심해의 바닥으로 내려가려고도 하지. 그러나 살아서는 그곳에 닿을 수 없네.

촛물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이라는 것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284p>






b

y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

가만히 수평으로 누워있다면 죽음인 거겠죠?

가만히 수직으로 서있다면 그 역시 살아는 있으나 죽음이고 말이죠.


수직으로 살아 수평으로 나부끼는 게 '음'이 되고 '춤'이 되는 건가요?

저는 문학도가 아니니 답을 찾진 않을 겁니다.

다만, 보를레르의 추위를 느끼고, 담요 한 장 놓아줄 수 있는 그런 놈이 되고 싶습니다. 먼저 박수 친 자보다 더 이르게 감동받았다면 눈치 볼 것 없이 일어서 감흥 하려 합니다. 전율을 느낀다면 기꺼이 떨고, 눈물을 쪽팔려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귀한 수업을 듣고 일어서 박수를 쳐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아쉽다니 이 마음과는 또 다른데 말이죠. 사실 책 읽으며 여러 번의 탄성으로 책을 놓고 먼 곳을 응시했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의 고요한 박수를 느끼실 거라 믿어봅니다.










골방에서 광장으로_

한낮의 광장에 서서 저는 부끄러움이 아닌 일광욕을 느끼는 수직과 수평의 흔들림을 간직합니다.






b

y

ㅂ ㅏ ㄹ ㅐ ㅁ



선생님


지금도 어딘가에 '이'가 있죠.

 '이'는 어둡고 습한 묵은 머리에 기생하죠.

는 머리칼과 같은 색을 하고선 보이지 않게 가렵게 해요. 


그 녀석이 기어 나오는 순간을 마주한 날을 기억합니다.

국민학교 아침 조회 시간 딱 이런 봄볕 아래 운동장이었어요. 교장선생님의 긴 훈화가 이어졌죠.

제 앞에 선 친구 머리 위로 꿈틀거리며 이가 기어 나왔어요. 


징그러웠냐고요? 


아뇨.

제 머리에도 있었는걸요.

그래서 저는 그 가려움을 알고 있었어요.

그 부끄러움도요.

신기했어요.

저 녀석도 봄볕을 좋아하는구나 하고요.

그러고 보니 모든 계절이 사람의 것만은 아니었어요.


제게 광장은 그런 부끄러움이었어요.

골방이 편했죠. 딱 발끝으로만 볕을 쫓았고요.

핀 조명은 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뒤로하고라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마저 골방을 택했어요. 드라큘라의 후예도 아닌데 말이죠.

광장의 빛에 피부가 타들어갈까 봐_


굉장한 일이죠?

이란.


광장으로 이끌어 내는 날이에요.

스멀스멀

말랑말랑

산들산들


빛발이 자꾸 길어져 웅크린 이의 옷자락까지 넘봐요.

더 이상 웅크릴 재간 없는 이가 몸을 볕에 내밀었어요.


퀭한 낯짝이 낮을 만나고

낯섦을 만나요.

낯선 이들의 책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끌어안는 삶'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이어령 선생님 소개로 만난 최인훈 선생님의 광장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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