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간을 건너는 데는 사람, 사랑, 우정이 아니라 독기가 필요했던 이도 있다. 보이지 않는 독기를 지팡이 삼아 버텨낸 이.
독기가 빠지고 강렬한 눈빛에 힘이 빠져나가면 그를 타박하던 이들조차 힘이 빠진다.
그래서일까. 잔뜩 독이 오른 사람을 보면 거부 뒤에 연민이 같이 선다. 이 감정이 함께라 스스로는 무척 모순 덩어리라 여긴다.
밀어둔 죽음이 근방에 서성인다. 내 것이 맞다.
뭘 그렇게까지 해? 언제 죽을 줄 알고.
.
.
. 모르니까.
내 주변 사람과 더 많이 만나고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양껏 그날 그날의 사랑과 사과를 하는 일.
생은 무료할 때보다 사랑이 차오를 때 더 살고 싶어졌다.
이 당연함이 모두에게 당연시되지 않기도 하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눈앞에 쓰레기가 떨어져 줍고 싶은 날이 있다. 가진 지폐 천 원이라도 기부 함에 넣고 싶은데 부끄러워 넣지 못한 적이 있다. 가진 지폐 만 원을 넣고 싶은데 착한척하는 것 같아 지나친 적이 있다. 울고 있는 이에게 음료 하나 쥐여주고 싶은데 오해받을까 봐 괜한 짓 말자 했다.
허지웅 에세이를 읽다 보니 나는 내게 죄지었다. 그냥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건데. 나쁜 짓도 아니고.
그의 책에 사람이 있다. 그가 겪었을 아픔을 언급조차 할 수 없다. 그 아픔을 건너오며 그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보였다.
그가 더 이상 바닥, 천장과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가 바라듯 바닥, 천장과 싸우는 누군가의 밤이 그의 책으로 꾸역꾸역이라도 하루를 건너주면 좋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