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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ㅂ ㅏ ㄹ ㅐ ㅁ Sep 05. 2024

가림

신호등을 건너려는 남자를 4층에서 내려다본다.

뛰려고 한두 걸음 내달리다 뒤로 돌아선다. 초록불이 몇 초 남지 않아서겠지.


나는 10초 남은 신호등을 건너지 않는다.

나는 멈췄지만 누군가는 그 짧은 시간을 뛰어 건넌다.

그가 스친 바람 뒤로 나만 미련하게 남는다.

그냥 따라 달릴 것을 멋쩍어진다.


살면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 적이 없다.

물, 불을 명확히 가리느라 조심스러운 날들이었다.

익사할까 봐, 불에 타들어갈까 봐 계획을 세우고 위험한 것들을 피해왔다.


'얘는 낯을 많이 가려요.'

'얘는 물불 안 가려요.'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나 좀 가려줘.'


이렇게나 가릴게 많아

가려운 곳도 많다.


긁적긁적

멋쩍은 손동작


신호등은 어김없이 바뀌고

또다시 10초도 남지 않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렇듯 멈춰 설 것이고

누군가는 바람을 일으키며 뛸 테다.


끄적끄적

좀 멋진 손동작


앞가림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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