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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을 기다릴 수 있나요?

by baraem

친정에 다녀오는 길

강진에 들러

다산 정약용 선생님 유배지였던 다산초당을 찾았다.


생가(산속)로 올라가는 길은

평일로 한가했고

덕분에 대나무들이 부대끼는 소리와

그 옛날 정약용 선생님 흉내를 내며

제법 무게 있게 걸어 올랐다.


적막한 산길을 아이들이 뛰어오르고

내려오는 남성분은 길을 살짝 비켜

길을 내주었다.


다산초당에 올라

짧은 역사 속 지식으로 퍼즐을 맞추며

감흥에 젖고

가꿔진 연못과 집을 둘러싼 나무의 기이한 형상에

의미를 더해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며

산을 내려왔다.


내리막길을 먼저 뛰어 내려가는 아이

어느 남성분이 아이를 불러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빠른 걸음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니

남성분은 내게 인사를 건네며


"혹시 돈 떨어뜨리지 않으셨어요?

제가 올라가는 길에는 못 봤는데

내려와 보니 떨어져 있더라고요.

그 사이에 다른 일행은 없어서 왠지 위에서 마주친

가족이 떨어뜨린 것 같다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나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얼른 손을 넣어보았다.

친정 엄마가 휴게소에서 간식 사 먹으라 아이들에게 만원씩 쥐어 준

2만 원이 없었다.


"앗, 제가 떨어뜨렸나 봐요."


다산초당을 오르며 마주쳤던 시점에서

족히 한 시간을 걸렸다.

혹여 엇갈릴까 길목에 서서 기다려주셨던

그 마음이 너무 값비싸 감사의 인사로도 가격을 치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누군가에게 예정 없는 시간을 할애하는 게 쉽지 않은 시기에

더없이 큰 선물을 받았다.


두 아이에게 어른의 참된 모습의 살아있음을 보이셨고

우리 부부에게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어른의 모습을 가르쳐주셨다.

기다림이라는 시간으로.


급히 차에 있던 음료를 건네드리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다산초당에서 정약용 선생님을 뵙고 오는 기분으로

차 안은 더없이 훈훈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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