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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냉장고가 고장 났다

by baraem

시골 부모님 댁

냉장고가 고장 났다고 한다


냉장고를 알아봐 달라신다

돈은 주신단다

받을 생각은 없다


냉장고를 알아봤다


디자인이 심플할수록

색상이 세련될수록

용량이 커질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같은 용량

다른 색상

다른 가격

냉장고 두 개를 두고

결제하려는 손가락에

고민이 많다


80대 부모님

가전을 사면 10년 이상인데

큰 용량이 필요할까?

디자인이 중요할까?

기력 떨어지시면

사용하실 일이 적지 않을까?


16만 원 더 저렴한 냉장고로

마음을 굳히고 결제하려는데

딸이 옆에 와서 뭐 사느냐 물었다


"할머니댁 냉장고가 고장 났데"


"그런데 왜 이걸 사? 엄마는 이게 예뻐?"


가만히 딸을 쳐다보는 내 얼굴이

달아오른다


딸에게 고민하던 두 냉장고를 보여주니

밝은 색 큰 용량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딸 말대로 결제했다


며칠 후,

시골 부모님 댁에

냉장고가 도착했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렸다


"00아 냉장고 들어왔다.

색깔도 이쁘고 크고 좋다~~"


엄마의 주방은

엄마의 냉장고는

또 하나의 자궁이었나 보다


채우고 채우고 채워

택배에 담고 담아

타지의 딸을 살찌운다


16만 원 부끄러움은

냉동실에 넣어 얼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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