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필사는 왜 하는 거예요?'
잠시 들르는 분들에게 나는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긴 말보다 필사 노트를 보시라며 펼쳐 두었지만 글쎄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저 나 잘해 놓은 작품 보시오!라는 오만은 아닌가.
아니 아니!
정신 차리자.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는 날카로운 말로 베었던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도. 그렇게 날카로운 말을 뱉음으로 건너야 했던 지랄 맞던 세상 속 구동매도.
훗날 돌고 돌아 흐르고 흘러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한다.
20대 힘들 때면 헌책방에 들렀다.
책 무더기 사이를 돌고 돌다 보면
책을 펼치지 않아도 책 제목들 만으로 넉넉해졌다.
퍽퍽한 마음이 넉넉해지는데 지구 몇 바퀴도 아닌 헌책방 몇 바퀴라니...
이런 기적이 어디 있고, 이런 명약이 어디 있을까.
돈 되지 않을 그런 곳에 그런 책들을 저마다의 균형감으로 채워 올린 헌책방은 그 자체의 기적이었고, 위안이었다.
돈 안 되는 일을 굳이 왜?
남편이 돈을 잘 버나 봐?
아니 아니.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그런 누군가 놓아둔 헌책방에서 내 지랄 맞던 청춘도 건넜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그 누군가의 무모한 공간을 꿈꿨다.
그 꿈을 조금 일찍 꾸게 된 것이다.
조금 더 관절 팔팔할 때, 조금 더 책을 옮기기 쉽게, 조금 더 일찍 누군가의 그곳이 되기 위해.
나는 생각으로 쌓아 올렸고,
나머지는 주변에서 밀어 올려준 자리가 더바램 필사 잡화점이다.
그래서 번뜩 오픈을 하루 앞둔 밤 무서웠다.
내가 감히 누군가의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노트를 사서 딸에게 줬다는 지인이 보내온 사진이다.
초3 아이는 자신의 노트를 갖게 되어 기쁘다며 엄마에게 효도를 해야겠단다.
기뻤을 아이와 그 모습에 흐뭇했을 엄마의 모습.
자신만의 노트를 갖는다는 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채우기 위해 필사를 통해 '나다운 이야기'를 끌어냈던 시기를 지나
'나'만 앞세우느라 '당신'을 잊어버린
'당신의 이야기'를 노트로 데려오는 일.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갈 곳이 없을 때
그 목적지가 되고 싶은 욕심을 품은
3평 공간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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