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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Nov 26. 2020

4.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4차시)

 오늘도 아이들의 얼굴을 모니터로 확인했다. 아직도 잠이 깨지 않아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아이도 있고, 후드티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며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은 아이도 있고, 마스크를 어디서 제일 큰 걸 찾아왔는지 얼굴의 3분의 2를 가린 채로 온 아이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하고, 

"우리는 지금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 오듯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미리 일어나 씻고, 학교에 오는 듯 교과서를 챙기고, 말 그대로 또 다른 의미의 등교를 하자."

라고 아이들을 다시 다잡아 본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한 나는 그런가? 생각해본다. 내가 준비한 수업 콘텐츠와 내가 쌍방향 수업 내용으로 고른 이 차시가 제대로 골라진 차시인가? 내가 편하려고 고른 수업은 아닌가? 정말 아이들과 소통을 위해 고른 수업인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건 어땠을까? 다 고르고, 수업을 마치고 난 다음에도 이 물음표들은 갈고리가 되어 나의 몸 사방을 헤집어 놓는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며 수업을 하고 있노라면, 가끔은 이 수업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내 눈앞에 있어도 아이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집에서 그냥 자기가 할 말을 쏟아 낼 수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묻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더 잘 기억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 아이들의 얼굴이 매번 새로운 까닭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소중해지는 올 한 해다. 더 많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더 많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 뇌리에 남기고 싶다.


 과제를 올린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하고 있으면, 나의 역할이 어디까지 인지 생각해본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메타인지를 기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연수를 듣고, 책을 읽어봐도, 그 해답이 불분명해진다. 불투명한 종이로 그 답을 가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같은 과제를 보고, 같은 설명을 들어도, 이렇게 다양한 과제가 나올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분명히 예시를 보여줬던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설명을 한 건가 반성해본다. 앞으론 더 설명을 친절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항상 반성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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