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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Nov 25. 2020

3.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3차시)

나는 아이들에게 진로와 관련해서 매년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내 장래희망의 변천사다. 자동차로 한글을 익혔던 나는 자동차를 수리하는 카센터 주인이 장래희망이었다. 그러다가 자동차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해에 우리 집에 삼촌이 컴퓨터를 주고 가셨다. 그때부터 컴퓨터는 내 삶을 지배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장래희망은 무려 4년이나 지속되었다. 워드프로세서 3급을 따 보겠다고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들었지만, 느린 타자 속도로 실기에서 떨어져 버렸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아버지가 보내주신 영어학원 덕분에 나는 영어가 좋아졌다. 영어가 좋아지니 영어 성적이 따라왔고, 자연히 내 장래희망은 외교관이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까지 외교관이 될 거라는 장래희망은 그 당시 영어 선생님께서, 외교관이 되는 과정에 대해 알려주신 이후로 나는 외교관을 포기하게 되었다. 공부를 잘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급회전한 내 장래희망은 외교관은 어렵지만 영어 선생님은 해봄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공주대 영어교육과로 가서 영어 선생님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주변 친구들이 모르는 걸 물어보는데 가장 많이 묻는 게 영어였다. 물론 나는 너무나도 문과적인 뇌를 가지고 있기에 수학을 못해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영어와 관련된 대회를 나가기도 했기에 주변 친구들이 나에게 영어를 물어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간혹, 아주 간혹 친구 중 b와 d를 혼동하고, g와 q를 혼동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3학년 부장 선생님께서는 내게 교대에 원서를 써볼 것을 권유하셨다.


“교대요? 거기 나오면 초등학교 선생님 되는 거 아니에요? 초등학생 애들은 너무 어려요. 걔들을 어떻게 가르쳐요...”

“해 봐. 너는 초등학교 가도 잘할 거야.”


그렇게 교대와 사대 모두 원서를 쓰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그 두 곳 모두 합격하게 되었고,

이제 선택은 오로지 나의 것이었다.


고민이 넘쳤다.

내 수년간의 꿈을 좇을 것인가, 갑자기 생겨버린 진로의 길을 따를 것인가.


물론 결론은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것처럼 교대에 들어가게 되고

임용고시를 거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 무얼 하는가, 정작 b와 d, g와 q를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문법이고 뭐고 다 사상누각이 되는 것이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중등 임용고시 합격률과 초등 임용고시 합격률을 검색해보긴 했다.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면서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내 장래희망도 처음부터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장래희망에 다다르기 위한 노력들은 아직도 나에게 재산이 된다. 자동차로 한글을 익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동차 이야기를 해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컴퓨터를 좋아해 교사가 되어서도 정보 쪽으로 내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영어를 좋아해서 적어도 너희 중 영어를 못하는 친구가 있으면 도와줄 수 있다.

너희들도 장래희망은 수시로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장래희망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한 건 인생의 끝까지 너희에게 남는다. 그러니 무엇이든 해보자. 나는 못할 거야 지레 포기하지 말자. 해보면 제일 잘 안다. 이게 내가 평생 해도 될만한 일이겠다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너희 장래희망은 계속 달라질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 쓴 글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장래희망이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일부러. 보통 “꿈”이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나도 예전엔 꿈이라는 말로 아이들에게 진로를 가르쳤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느끼게 된 점이 하나 있다. 직업이 꿈이 될 수 있을까? 그 직업을 가지면 나는 꿈을 다 이룬 걸까? 그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나는 장래희망, 혹은 가지고 싶은 직업이라는 말로 진로탐색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항상 덧붙인다.


직업을 꿈으로 갖지 마라. 그 대신 직업 앞에 무얼 하고 싶은지 적어보자. 그리고 그 직업을 빼고도 그 꿈이 실현 가능하다면, 그게 꿈이다.


나는 아이들의 꿈을 길러주는 선생님이 꿈이다. 직업을 빼보자, 나는 아이들의 꿈을 길러주는 것이 꿈이다. 아직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아직도 모르겠다, 없다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안쓰럽다. 아직은 거기까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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