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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Nov 25. 2020

1. 실시간 스릴러 극장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1차시)

 9시. 우리 반 아이들은 분명히 27명이다. 그런데 왜 내 앞에는 6명뿐인 걸까. 그래도 그나마 고무적인 건 점차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들어올 때마다 명렬표에 줄을 치고, 치고, 치고, 치었다.


 9시 20분. 드디어 22명이 내 앞에 있다. 물론 이게 아비규환인 건가 싶을 정도로 카메라는 꺼진 것 반, 켜진 것 반, 내가 아무리 악을 써도 소리가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아이가 둘. 맞다. 저 22명에서 나를 제해야 한다. 21명. 우리 반에서 6명이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보자.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삐 소리 이후에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9시 30분. 내 인내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분명히 일주일 전, 나는 아이들 앞에서 선언하였다. “나도! 너희들 얼굴을 실시간으로 한번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클래스팅과 연계해서 줌을 써서 너희와 테스트 수업을 해볼 거구, 화요일에는 구글 클래스룸 앱을 통해 들어와서 구글 미트에서 너희들을 만날 거야. 두 개 비교해보고 어느 게 더 끊기는지, 영상은 어떤 게 더 잘 보이는지, 소리는 잘 들리는지 알아봐야 할 게 많으니까.” 그리고 일주일 뒤 지금, 스트레스 테스트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었다. 전활 받지 않고 있는 아이들은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들어오게 해야 했다.


 9시 40분. 28명. 이 숫자를 드디어 보게 되다니. 이게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아이들에게 추석 연휴를 잘 보냈는지 묻고 보니 아이들은 음소거 상태다. 내 말은 들려도 아이들의 말은 나에게 들리지 않는다. 음소거 해제를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의 권한이었다. 해제 요청을 다 보내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더블링 되어 울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얘들아~ 얘들아~ 추석은~ 추석은~ 잘 보냈니?~ 잘 보냈니?~ “선생님. 자꾸 소리가 두 번씩 들려요.” “ 그건 어떤 친구가 소리를 너무 키워서 그래. 소리를 많이 키워둔 친구들은 조금 줄였으면 좋겠어. 아니면 주변에 이어폰이 있으면 연결해보자.”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이어폰을 찾도록 놔두지 않았어야 했다. “엄마!! 이어폰 얻다 놨어!” “이어폰이 어디 있더라?!”


 10시. 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오늘 e학습터 잘 듣고, 과제는 클래스팅에 잘 올려줘. 자 이제 나가서 e학습터 시작하면 돼! 잘 가!”


 10시 30분. e학습터 비밀번호를 잊었다는 친구가 둘이다. 추석 연휴는 망각의 시간이었다. 꼭 잊어버리지 않을 비밀번호로 바꾸어 보자고 아이를 설득해본다.

 

 11시. 교과서를 놓고 가서 교실에 들렀다 가는 친구가 지금까지 4명이었다. 나는 분명히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챙겼느냐고 물었다. 확인하지 못한 나를 자책한다.


 20시. 나는 아직 아이들의 과제를 기다리고, 격려하고, 사정하고, 채근하고 있다. 퇴근을 언제 했던 것 같기는 한데, 퇴근 한 것 같지 않다.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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